황제 의전 논란

입력
2021.08.30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의전(儀典)'을 '행사를 치르는 일정한 법식이나 정해진 방식에 따라 치르는 행사'로 풀이한다. 공적으로 치르는 일에 관련된 절차, 행동 규범 같은 것으로, 원뜻으로만 본다면 행사를 효율적이고 품격 있게 완성하는 데 필요한 장치다. 하지만 낡은 의전이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신분 차별을 상징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때는 없느니만 못하다는 지탄을 받기도 한다.

□ 문화가 제각각이어서 그 나라 의전에 얼마나 거품이 끼어 있는지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한국 사회에 불필요한 의전이 많다는 서양인을 만나기 어렵지 않다. 2000년대 초반부터 LG전자 프랑스법인을 10년간 이끌었던 한 프랑스인은 '한국인은 미쳤다'라는 책에서 한국 기업의 성과주의, 위계주의와 함께 이해 못 할 의전을 비판한다. 그 사례로 공항에서 고위 임원 가방 들 사람을 정한다거나 파리 경찰에 경영진 길 안내해주도록 할 수 없냐고 문의받은 일을 들었다. 부회장 사진을 찍었다고 현지법인 직원을 해고하라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이 임시로 머물 충북 진천 인재개발원에서 27일 열린 법무부 차관 브리핑이 논란이 됐다. 비를 피하기 위해 차관 뒤에서 우산 받쳐 든 직원의 무릎 꿇은 사진을 두고 많은 언론이 '황제 의전' '과잉 의전'이라고 했다. 정장 차림으로 비에 젖은 길바닥에 무릎 꿇고 몸을 낮춰 상관에게 우산을 받쳐 든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 기사 제목만 봐서는 법무부가 억지로 직원 무릎을 꿇린 듯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애초 차관 옆에서 우산을 들었던 직원은 브리핑하는 차관만 깔끔하게 화면에 담기 원했던 현장 기자 요청으로 차관 뒤로 자리를 옮겼다. 그마저 자세를 낮추라고 해 엉거주춤 서 있다 무릎까지 꿇은 것으로 보인다. 누구도 이런 결과를 원한 건 아니지만 기자가 일련의 행동을 요구하고 법무부가 따르면서 생긴 불상사다. 전말을 따져 영상 취재나 정부의 언론 협조 관행을 돌아볼 기회로 삼으면 될 일을 책임을 나눠진 언론이 황제 의전으로 몰아붙이는 행태는 이해하기 어렵다.

김범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