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 갑질에 세상 버린 동생, 일 그만두라 더 말렸어야 했는데..."

입력
2021.08.2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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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입주민 폭행 뒤 숨진 경비원 최희석씨
'딸아 사랑해' 숨지면서도 딸 생일 30만 원 남겨
대법원, 폭행 협박 혐의 가해자 징역 5년 확정
친형 "관리 방기한 관리소 관계자도 책임져야"

"그때 동생이 정말 힘들어했는데, 일을 그만두라고 좀 더 말리지 않은 게 자꾸 생각이 나고 후회가 됩니다."

아파트 입주민 갑질에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최희석씨의 친형 광석씨는 29일 입주민의 실형이 확정된 뒤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일자리를 다시 알아보라고 재차 말렸던 자신을 향해 "딸 시집도 보내야 하고, 아직은 일을 해야 한다"며 꿋꿋하게 버티던 동생의 얼굴이 여전히 눈 앞에 선하다고 했다. 광석씨는 한국일보 통화에서 "아빠가 없는 집에 들어갈 때마다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던 조카도 이제서야 서서히 마음을 안정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씨를 수차례 폭행하고 협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입주민 심모(50)씨에 대해 최근 징역 5년을 확정했다.

심씨는 지난해 4월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던 최씨를 때리고, 경찰 신고를 문제 삼아 보복하려고 최씨를 감금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경찰과 검찰 조사 결과 심씨는 지난해 4월 21일 최씨가 주차장을 정리하기 위해 심씨 차량을 밀자 "경비 주제에 하지 말라는 짓을 하냐"며 최씨 가슴을 밀치고 얼굴을 때렸다. 최씨가 경찰에 신고한 사실을 안 뒤로는 경비실에 최씨를 감금한 채 주먹으로 얼굴을 폭행했다.

심씨의 갑질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신이 경찰 수사를 받게 될 것을 우려해 "폭행을 하지 않았는데 최씨가 거짓말을 했다"며 경찰에 허위 고소를 했고, 폭행 사건으로 경찰 연락을 받자 재차 최씨를 때렸다. 최씨가 경찰 조사를 받고 온 뒤에는 "머슴의 끝이 없는 거짓이 어디까지인지 용서할 수 없다. 돈을 많이 만들어 놔라. 수술비만 2,000만원이 넘을 것"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 협박한 혐의도 있다.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던 최씨는 심씨로부터 폭행 및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최희석씨가 세상을 떠난 지난해 5월 10일은 공교롭게도 최씨가 가장 사랑한 둘째 딸의 생일이었다. 아파트 입주민 심씨의 폭행에 코뼈가 부러져 입원했던 최씨는 그날 병원을 몰래 빠져 나와 집으로 향했다. 둘째 딸은 당시 친구들이 생일을 축하해준다고 해서 집에 없었다. 생때같은 딸과 헤어지는 선택을 하는 중에도 그는 딸의 생일을 기억했다. 숨진 최씨의 품 안에는 '딸아 사랑해'라는 메모와 함께 30만 원이 든 현금봉투가 들어 있었다. 그의 나이 59세였다.

1심 재판부는 "심씨는 범행을 부인하며 잘못을 진지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징역 5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 역시 "심씨는 법원에 수차례에 걸쳐 반성문을 제출했으나, 최씨와 언론 등을 원망하며 자기 합리화만 꾀하고 있다"며 1심 판결을 유지했다. 대법원도 "원심판결 이유를 살펴보면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최씨의 친형 광석씨는 "재판부 판단을 존중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당시 동생의 피해를 알면서도 외면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들은 여전히 책임을 지고 있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광석씨는 "동생의 토로에도 근무할 아파트 동을 옮겨주지 않는 등 업무를 방기한 관리소 관계자는 여전히 같은 곳에서 근무 중"이라며 "법적 책임을 물을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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