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보다 소중한 평화" 카불 탈출해 도쿄에 간 아프간 선수들

입력
2021.08.2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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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도움으로 파리 머물며 27일 도쿄행 올라
쿠다다니, 아프간 최초 패럴림픽 참가 여성
조정원 태권도연맹 총재 “출전 도울 수 있어 영광”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장악으로 도쿄패럴림픽 참가가 불투명했던 아프가니스탄 선수 2명이 무사히 일본 도쿄에 도착해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됐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는 아프가니스탄 선수 자키아 쿠다다디(23)와 호사인 라소울리(24)가 28일 도쿄에 도착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진단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아 선수촌에 입촌했다고 29일 밝혔다. 태권도 선수인 쿠다다디는 아프간 최초의 여성 패럴럼픽 참가 국가대표이며 라소울리는 남성 육상선수다.

이들은 당초 16일 아프간에서 대회 참가를 위해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탈레반의 점령으로 수도 카불에서 발이 묶였다. 쿠다다디는 영상 메시지를 언론에 전하며 “아프간 여성이 패럴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기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각국 정부와 기관 등에 호소했다.

이들의 탈출 경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난 주말 복수의 정부와 IPC, 스포츠ㆍ인권 기관 등의 도움으로 카불을 빠져나와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이후 프랑스국립스포츠연구원(INSEP)에서 체류해 왔고, 27일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서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프간 선수들은 입촌 후 앤드루 파슨스 IPC 위원장, 첼시 고텔 IPC 선수위원회 위원장과 별도의 회의실에서 미팅을 가진 뒤 안정을 되찾고 있다. 크레이그 스펜스 IPC 대변인은 “미팅을 진행하며 선수들이 매우 감정적이었고, 참석자 모두 많은 눈물을 쏟았다”며 “이들은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운 한 주를 보냈다.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회 이후 선수들의 거취에 대해서는 “선수들이 선택할 문제이며 우리는 그들의 바람을 존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IPC는 선수 보호를 위해 아프가니스탄 대표팀의 미디어 인터뷰(공동취재구역 인터뷰 포함)를 대회 기간 동안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아프간 패럴림픽위원회는 “선수들의 꿈을 실현해 준 여러 정부와 스포츠 및 인권 단체, IPC, 프랑스ㆍ영국 패럴림픽 위원회, 세계태권도연맹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고 전했다.

쿠다다디는 다음 달 2일 처음으로 패럴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태권도 여자 49㎏급 K44 종목에 출전한다. 당초 28일 남자 육상 100m(스포츠등급 T47)에 출전 예정이었던 라소울리는 31일 열리는 육상 멀리뛰기에 출전한다. 400m 참가도 검토됐지만 “단거리 선수여서 무리가 있다”는 그의 의견에 따라 멀리뛰기만 참가하기로 했다.

조정원 총재가 이끄는 세계태권도연맹(WT)은 “두 선수의 출전을 도울 수 있어 영광스럽다”는 입장을 전했다. WT는 쿠다다디의 대체 선수를 뽑지 않은 채, 현지 태권도인 등을 통해 그가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왔다. 조 총재는 “IPC와 여러 단체, 많은 관련된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우리가 이 파트너십에 속한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스포츠는 평화를 증진하고, 희망을 키우는 데 강력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평화가 승리보다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박관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