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구는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高崎)시에 있는 현립공원 ‘군마의 숲’에 설치된 추도비 뒷면에 적힌 비문이다. 비석의 앞면에는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문구가 일본어·한국어·영어로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위와 같은 내용이 일본어와 한국어로 나란히 적혀 있다.
추도비가 처음 설치된 것은 2004년 4월. 일본 시민단체인 ‘군마 평화유족회’가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역사를 이해하고 우호를 증진한다는 목적으로 2014년 1월까지를 기한으로 현과 논의해 설치했다.
역사를 기억하고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일본 시민들의 노력으로 세워진 이 비가 철거 위기를 맞았다. 2014년 시민단체의 설치 갱신 요청을 현이 거부함에 따라 제기된 소송에서, 현의 처분을 ‘재량권 일탈’이라고 판결한 1심이 최근 항소심에서 뒤집혔기 때문이다.
일본 도쿄고등재판소(법원)는 일제 강점기에 동원돼 강제 노역한 조선인 희생자를 기리는 추도비를 계속 공원에 두지 않겠다며 설치 연기 신청을 불허한 지자체의 결정이 적법하다고 지난 26일 판결했다.
애초 군마현은 추도비 앞에서 진행된 추도식 참가자가 “강제 연행의 사실을 알려서 올바른 역사 인식을 지니도록 하고 싶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정치적 행사를 하지 않기로 한 조건에 위배된다며 설치 연장을 불허했다. 1심의 경우 “추도비 앞에서 정치적 행사를 했더라도, 비의 존재 자체가 도시 공원의 기능을 해치는 것은 아니다”라고 봤으나, 항소심은 정반대로 “추도비 앞에서 정치적 행사가 열리고 있으니, 비가 존재함으로써 도시 공원의 기능을 손상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봤다.
2014년부터 6년째 이어져 온 이 소송은 강제 징용이나 일본군 위안부 등 일본의 전쟁 당시 가해사실을 잊도록 하려는 일본 정부와 우익 세력의 ‘역사 지우기’ 움직임과 이에 맞서 가해 책임과 역사를 기억하려는 일본 시민 간의 싸움으로 관심을 받아 왔다. 항소심 당일 도쿄고등법원 앞에는 추도비 철거를 주장하는 우익 단체와 이에 큰소리로 맞서는 ‘카운터’들이 대치하기도 했다.
비석 설치 시민단체를 계승한 원고인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의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을 대리하는 변호사는 “부당 판결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활동을 지원해 온 군마현 시민 마쓰모토 히로미씨는 “목표는 최고재판소(대법원)에서 잘 열리지 않는 구두 변론을 열게 하거나 고등법원에 파기 환송시키는 것”이라며 “모두 힘껏 싸우겠다는 마음”이라고 각오를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