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폐암 보고서] 폐암 4기라도 절망은 이르다

입력
2021.08.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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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룡 대한폐암학회 총무이사(고려대 구로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폐암은 지난 20년간 부동의 암 사망률 1위다. 2019년 사망자 29만5,110명 중 27.5%(81,203명)가 암으로 사망했는데, 이 중 폐암으로 인한 사망자는 22.8%(1만8,574명)였다(통계청). 또 폐암 5년 생존율(2014~2018년)은 32.4%로 췌장암(12.6%), 담낭암 및 기타 담도암(28.8%)에 이어 세 번째로 낮다.

폐암은 객혈을 제외하곤 별다른 증상이 없어 조기 진단이 어렵다. 증상이 생겨도 기침ㆍ가래 등 감기 증상과 비슷해 진료 시기를 놓쳐 병기(病期)가 상당히 진행돼야 병원을 찾는다. 폐암 사망률이 높은 이유다.

비소(非小)세포폐암은 1~3A기까지 수술로 절제할 수 있다. 하지만 병기가 그 이상 진행됐다면 항암ㆍ방사선 치료를 해야 한다. 조기 진단돼 수술해도 비소세포폐암은 재발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담배를 피우지 않은 여성에게서 비소세포폐암 발병이 늘고 있다. 비흡연 여성 비소세포폐암의 주원인은 EGFR 돌연변이다. EGFR 돌연변이 비소세포폐암은 조기 발견해 수술로 제거한 후 항암 치료를 추가로 받아도 2기라면 40~60%, 3기는 70%가량 재발한다.

고령화와 비흡연 여성에게서 폐암을 조기 진단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 비흡연 여성에게서 발생하는 폐암은 3, 4기로 진행됐을 때가 많다.

비소세포폐암의 전이도 치료 과정 중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55~80%는 진단 당시부터 폐암이 국소적으로 진행됐거나 원격 전이된 상태다. 또 비소세포폐암 환자 중 25~40%는 뇌 전이가 생긴다. 폐암 전이가 잘 되는 것은 암세포가 폐에 연결된 동맥을 따라 심장으로 이동한 뒤 온몸으로 퍼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폐암은 진단과 치료가 무척 어렵다. 다행히 치료법이 계속 발전해 생존율은 높아지고, 원격 전이 발생률도 흉부 컴퓨터단층촬영(CT)이 보편화돼 조기 진단이 늘어나 2010년 이후 매년 5.0%씩 줄고 있다.

표적 치료제 발전도 한몫했다. 표적 치료제는 질병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표적으로 해서 이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단백질을 억제하는 치료제다.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표적 치료제가 한 예다. 표적 치료제가 속속 나오면서 3세대 표적 치료제까지 나왔다. 3세대 표적 치료제는 뇌 전이나 항암제 약제 내성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 3세대 EGFR 표적 치료제 신약 ‘렉라자’도 개발됐다. 드디어 국내 기술로 개발된 국산 신약이 등장해 한 가지밖에 없던 옵션에서 치료 선택 폭이 넓어진 것이다. 이 신약은 EGFR 돌연변이와 표적 치료제로 인해 생기는 T790M 돌연변이에서도 종양을 없애는 우수한 효과를 보였다. 특히 ‘뇌혈관 장벽(Blood Brain BarrierㆍBBB)’ 투과율이 높아 뇌 전이 환자에서 효과가 좋았고, 심장ㆍ피부 독성 부작용도 낮다.

ALK 유전자 변이 환자의 경우 ALK 억제제를 투여했을 때 평균 생존 기간이 7년이 넘는 것으로 보고됐다. 특히 2, 3세대 ALK 억제제는 BBB 투과율이 높아 뇌 전이 환자에서 치료 효과가 좋고, 치료 기간 중 뇌 전이 발생률을 낮출 수 있다.

그동안 폐암 3기부터 수술이 아닌 항암 치료를 끊임없이 받아야 했다. 하지만 새로운 치료 옵션이 개발돼 전세가 바뀌고 있다. 국산 신약은 지난 7월부터 처방할 수 있게 되면서 이를 활용한 병용 요법 등 선택지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폐암 4기라도 절망하기는 이르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