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의 지휘 책임을 물어 금융감독원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내린 중징계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금감원이 중징계의 근거로 든 법의 해석과 적용을 잘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로써 DLF, 라임 등 일련의 사모펀드 사태에서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를 겨냥한 금감원 징계의 적법성이 흔들리게 됐다. 애초 무리한 징계를 강행했다는 비판과 함께, 비슷한 이유로 징계를 앞둔 다른 금융사 CEO 사건에도 줄줄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27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 강우찬)는 손 회장이 금감원장을 상대로 낸 문책경고 등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금감원의 징계 사유 5개 중 4개가 법리를 잘못 적용한 ‘부당한 징계’였다고 판단했다. “금융사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가 아닌 ‘준수 의무’ 위반을 이유로 금감원이 금융사나 임직원을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2월 DLF 사태의 책임을 물어 당시 우리은행장이었던 손 회장에게 향후 3년간 금융권 재취업이 제한되는 중징계인 ‘문책경고’를 내렸다. 손 회장이 내부통제 기준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는데, 법원은 이런 논리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판결이 확정되면 손 회장은 연임도 가능해진다.
다만 법원은 금감원 징계사유 중 하나인 '금융상품 선정절차 마련 위반'은 인정했다. 우리은행이 금융상품 선정·판매 시 실질적인 견제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만 규정하고 준수 의무 위반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는 금융사 지배구조법도 손볼 필요가 있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손 회장의 소송은 각종 사모펀드 관련 징계를 받은 금융사 CEO 중 첫 번째 불복 사례였다. 자연히 이번 판결로, 비슷한 논리에 근거한 금감원의 다른 CEO 제재에도 영향이 불가피해졌다.
당장 DLF 사건에서 손 회장과 마찬가지로 문책경고를 받은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당시 하나은행장)이 제기한 징계 취소 행정소송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또 DLF 사태 이후 발생한 라임, 옵티머스 펀드환매 중단 사태 처리 과정에서 금감원의 징계를 받은 CEO들의 최종 제재 결론도 변화가 예상된다.
금감원은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에서 신한금융투자, KB증권, 대신증권, NH투자증권 등 전현직 대표들에게도 중징계를 내렸다. 금융위는 지난해 11월 금감원이 올린 라임 관련 제재안을 9개월째 심사하고 있다.
최근 수장이 교체된 금감원의 태도 변화도 감지된다. CEO 제재를 주도했던 윤석헌 전 원장과 달리, 정은보 신임 원장은 "사후 제재에만 의존해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 금감원은 이날 법원 판결에 대해 "판결문을 검토해 항소 여부를 정하겠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내달 초로 예상되는 하나은행에 대한 라임펀드 등 관련 제재심의위원회도 "제재심 위원들의 판단을 고려해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신임 원장 취임사에서 밝혔듯 사전적 감독을 통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법과 원칙에 따른 사후적 제재로 균형감있게 운영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