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보건노조 내달 2일 총파업… 선별진료소 비운다

입력
2021.08.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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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률 90%...다음 달 2일 총파업 가결
코로나 업무 1만2000명 파업 참여 예상 
노·정 11시간 끝장토론에도 합의 불발  
복지부 "협의 노력...비상진료대책도 마련"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가 끝나고 국회에서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6년이 지난 지금 단 한 곳도 운영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코로나19 1년 7개월간 인력 부족 상태에서 버틴 의료진은 한계에 도달했어요. 코로나 병상은 늘리면서 의료진은 늘려주지 않았습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의료 현장은 하나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절박감이 파업으로 이끌었습니다."

나순자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2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4차 유행 중에도 파업을 결의한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그는 “벼랑 끝에 내몰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코로나19 최전선 의료 노동자들이 벌이는 절박한 파업”이라며 울먹이기도 했다.

노조는 이날 136개 의료기관 124개 지부에서 치러진 투표 결과 89.8%의 찬성으로 총파업 돌입이 가결됐다고 밝혔다. 총 조합원 5만6,091명 중 4만5,892명이 투표해 81.8%의 투표율을 보였으며, 4만1,191명이 파업에 찬성했다. 노조 측은 “코로나19 환자를 보는 감염병 전담병원과 사립대 병원의 투표율이 높게 나왔다”고 전했다.

"코로나 치료병상, 선별진료소도 파업 참여"

이로써 노조는 예고한 대로 다음 달 2일 오전 7시 파업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나 위원장은 “의료인력과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명확한 해결책을 정부가 제시하지 않는다면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파업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업 참여 인원은 중환자실, 응급실, 분만실, 신생아실 등 필수 유지 업무를 담당하는 노조원 30%를 제외한 약 3만9,000명이다. 주로 △병동과 외래 간호사 △의료기사 △임상병리사 △물리치료사 △시설과 △환자 이송·보조 인력 등 의사를 제외한 의료진 대부분이다. 이 가운데 코로나19 관련 업무 담당자는 약 1만2,000명(30%)으로 추산된다. 노조는 "코로나19 전담치료병상과 선별진료소 인력은 필수 업무 종사자가 아니라서 파업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실제로 파업이 진행된다면 코로나19 진단과 치료 현장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투표에 적극 참여했던 감염병 전담병원의 간호사들이 업무에서 손을 뗄 경우 후폭풍은 적지 않을 거란 예상이다. 코로나19 중환자를 보는 '빅5'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보건의료노조에 속한 서울아산병원과 서울성모병원 측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의료계에서는 지난해 전공의 파업으로 생겼던 혼란이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 "일정 규모 병원 모두 코로나 환자 받자"

아직 시간은 있다. 노조는 “파업 전까지 남은 6일간 정부가 얼마나 강력한 의지를 갖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내놓는가에 따라 파업이 '실제 상황'이 될 수도 있고 극적으로 해결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지난 17일 124개 지부 동시 쟁의조정신청 후 노조는 보건복지부와 두 차례 교섭을 가졌다. 26일에는 11시간 동안 끝장토론까지 했지만, 공공의료와 인력확충이라는 핵심 쟁점에서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나 위원장은 “전국 70개 중진료권에 공공병원을 1곳씩 설립해야 한다는 요구에 복지부는 ‘재정당국과 논의해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간호사 1명당 담당 환자 수 기준을 정하는 간호등급제엔 개선 입장은 표명했지만 언제까지 실시하겠다는 구체적 계획이 없는 선언에 그쳤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방향엔 동의하나, 당장 인력과 재정 투입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창준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간호사 담당 환자 수를 줄이는 기준을 마련해 시행했을 때 당장 코로나 의료 대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일단 기준을 마련하되, 시행은 현장 상황을 봐야 할 필요가 있어 노조 측과 더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파업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협의 노력을 하겠다"며 "파업 시행에 대비해 중앙과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비상진료 대책도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료계는 '위드 코로나'로 가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노조 요구에 실질적인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코로나19 환자를 전담병원에 국한해 보게 한 전략이 초기엔 유효했지만, 환자가 늘면 감당할 수 없다"며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건 전국 일정 규모 이상의 병원에서 모두 코로나19 환자를 보게 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감염병 환자를 보는 의료진에 대한 보상과 인력 체계 수정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코로나19로 건강보험 재정수지가 나아졌으니 신규 간호사 채용이 이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박소영 기자
맹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