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이 차기 총재 선거 일정을 발표하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정조회장이 스가 요시히데 총리에 맞서 출사표를 던지면서 일본 집권당 내 ‘정치의 계절’이 시작됐다. 현직 총리가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연임 의사를 표명하는 경우 경선까지 치러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후보로 나서려면 국회의원 20명의 추천이 필요한 제도가 1972년 도입된 이후, 현직 총리와의 경선이 실제 치러진 경우는 4번밖에 없었다. 이중 현직이 패배한 것은 1978년 후쿠다 다케오 총리가 유일했다.
2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기시다 전 정조회장이 이렇게 확률이 낮은 승부에 도전한 것은 스가 총리에 대한 당내 불만을 고려할 때 자신이 ‘2001년 고이즈미 돌풍’을 재연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시 상대는 최대 파벌의 수장 하시모토 류타로였으나, 무파벌의 고이즈미가 파벌주의 해체를 의미하는 ‘자민당을 부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일반 당원 대상 예비선거에서 바람을 일으키며 승리했다.
기시다 역시 일반 당원 투표에 기대를 거는 것으로 보인다. 아베 전 총리가 건강을 이유로 갑작스럽게 사임한 지난해는 당원 투표를 생략한 채 의원 투표만으로 약식 총재 선거를 치렀다.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이 이끄는 니카이파가 가장 먼저 스가 후보를 지지하고,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에 영향력이 있는 아베 전 총리와 아소파를 이끄는 아소 다로 부총리 등이 지지를 표명하는 등 총 5개 파벌이 스가를 지지하자 게임은 일찌감치 정리됐다. 하지만 이번엔 당원 투표가 부활했고, 의원 투표와 동수로 반영된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이번에는 파벌 내에서도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나오지 않고 있다. 스가 내각의 지지율이 1년 만에 30% 아래로 떨어지자 3선 이내 의원들의 경우 이번 총선에 낙선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최근 실시한 자민당 자체 조사에서는 현재보다 40석을 더 잃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니카이파(47명)와 이시하라파(10명)는 공식적으로 스가 총리의 연임을 지지했지만 니카이파 내에선 “사전에 의논이 없었다”며 반대 의견이 분출하고 있다. 호소다파 등 다른 파벌도 수장들은 스가 지지를 표명했지만 파벌 공식 입장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파벌 회의 결과 이견이 심하면 의원 개개인의 투표에 맡기는 것도 가능하다. 기시다 측은 파벌 내 젊은 의원들의 이탈표가 나오고 스가 총리에 불만이 많은 당원표가 결집하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다.
당내 역학 구도를 활용, 니카이 간사장을 배제하고 아베 전 총리와 아소 부총리 측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도 작용했다. 26일 회견에서 ‘자민당 개혁’을 주장한 기시다의 정책은 자민당 임원 임기를 최대 3년으로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5년 넘게 최장 기간 간사장을 차지하고 있는 니카이를 겨냥한 것이 명백하다는 반응이다. 니카이 간사장 유임을 원치 않는 아베와 아소를 향한 유인책이란 게 니혼게이자이의 분석이다.
하지만 기시다의 도전이 성공할 가능성은 아직은 크지 않다. 2001년 당시 고이즈미의 높은 인지도와 스타성이 없다. 주요 여론조사에선 고노 다로 행정개혁장관과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 항상 1, 2위를 다툴 뿐, 기시다 전 정조회장의 지지율은 한참 아래다. ‘반(反)스가’ 표가 기시다에 집중될 것이란 보장도 없다. 총재 선거 출마 의향을 밝힌 시모무라 하쿠분 정조회장과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장관의 경우 전날만 해도 의원 20명 추천을 모으지 못할 것으로 보도됐으나, 27일부터는 가능할 것 같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후보가 난립하면 스가 총리가 유리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