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철군 완료 ‘디데이(D-day)’를 엿새 앞둔 아프가니스탄 상황이 심상치 않다. 그간 수도 카불의 국제공항에만 머물던 미군은 헬기까지 띄워 시내에서 자국민 등을 대피시키는 ‘긴급 비밀 작전’에 나섰다. 군대가 떠나야 할 날은 코앞인데, 여전히 1,000명이 훨씬 넘는 미국인들의 발이 현지에 묶이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는 방증이다.
게다가 아프간을 떠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인 카불공항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공항 인근에서 테러가 발생할 조짐이 보인다는 구체적 정보가 포착됐다. 미군 철수 일정이 시시각각 다가오며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슬람국가(IS) 등 무장단체의 테러 위협마저 커지면서 혼란은 극에 달하고 있다.
25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군은 최근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바깥에서 미국인과 아프간 현지인 조력자들을 대피시키는 비밀 작전을 실시했다. 지상군 병력뿐 아니라, 치누크 헬기 세 대도 투입해 공항 밖 시내에 머물던 시민들을 구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정보국(CIA) 요원도 이 과정에 동원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작전은 최근 일주일간 세 차례 수행됐다. 지난 20일 카불 공항 보안 경계선으로부터 약 200m 떨어진 호텔에서 구조된 미국인 169명을 포함, 이날까지 총 185명이 이런 방식으로 무사히 공항에 도착했다는 게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의 설명이다. WSJ는 “미군이 공항 외부에서 공수작전을 벌인 건 (아프간 사태 이후)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사실은 현지 상황이 분초를 다툴 만큼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 아프간에 남은 미군 약 5,400명은 카불 공항 내부에 주둔해 있다. 그간 미 국방부는 군의 통제 범위를 공항으로 한정하면서 “대피를 원하는 시민들은 자력으로 공항에 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카불 공항 바깥에서는 아프간을 점령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경계를 서고 있다.
그러나 철군 시한(31일)이 목전으로 다가오며 이런 방침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미군 철수 완료가 초읽기에 들어갔는데, 탈레반의 위협 탓에 사람들이 공항에 접근조차 하기 힘들어지면서 ‘자력 도착’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게 됐다는 얘기다. 미 국무부는 현재 아프간에 미국인 1,500여 명이 남았다고 추정한다. 특히 30, 31일에는 민간인보다 군수물자 운반에 주력할 계획인 데다, 내달 1일 이후 탈레반 통치가 본격화하면 대피 자체가 여의치 않아질 수 있는 만큼 헬기까지 띄워 대피 작전에 속도를 내는 셈이다.
하지만 카불 공항 입성에 성공한다 해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서방 국가들은 이날 잇따라 자국민들에게 공항 접근을 막는 ‘긴급 경보’를 발령했다. 테러 위협이 심각해진 탓이다. 주아프간 미국 대사관은 “개별적 지시를 받지 않은 미국 시민은 공항으로의 이동 또는 공항 출입문 인근에 있는 것을 피하라”고 권고했다. 영국과 호주는 “(공항에) 지속적이고 높은 테러 공격 위험이 있다”고 명시하기까지 했다.
실제 공항을 타깃으로 한 테러 가능성이 현존한다는 증언도 나온다. IS의 아프간 지부인 IS-K의 위협이 대표적이다. 애덤 시프 미 하원 정보위원장은 “IS-K는 우리 항공기와 직원들, 카불 공항 주변에 모인 이들에게 매우 현실적인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CNN방송도 지역 대(對)테러기관 관계자를 인용, “최대 수백 명의 IS-K 대원이 바그람과 풀에차르키 감옥에서 탈출했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아프간 대피의 막차를 타려 하는 미국 및 동맹국 국민들을 겨냥한 공격의 토양이 이미 마련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