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온라인으로 열린 '백래시 대응 범페미 네트워크 토론회'에 참석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카메라에 본인의 스마트폰 화면을 비췄다. 메시지함에 문자 5,900여 개가 쌓여 있었다. '신남성연대' 회원들이 비슷한 내용의 문자를 계속 보내는 이른바 '문자 총공'이다. '남혐(남성혐오) 증거를 온 천하에 알리겠다' '페미니즘은 표가 되지 않는다' '급진 페미들에게 맞서는 정상인들의 화력이다' 같은 내용이 가득했다.
집게손가락부터 쇼트컷까지 젠더 이슈를 둘러싼 'OO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페미니스트가 검증과 색출, 공격의 대상이 되고 반(反)페미니즘이 주도하는 백래시(사회·정치 진보에 대한 반발)는 갈수록 거세지는 추세다. 여성운동 역사에 백래시는 항상 같이 존재해 왔지만 최근의 백래시는 이전과 분명 다르다고 여성단체들은 말한다. 조직화한 결속력으로 이뤄지는 단체행동에 젠더갈등을 부추기는 정치권까지 더해져 평등과 공정 논의가 훼손된다는 지적이다.
이날 용 의원과 장혜영 정의당 의원, 백래시 대응 범페미 네트워크(백범넷)가 '백래시 한국사회, 혐오가 아닌 성평등을 이끄는 정치로'를 주제로 연 토론회에서는 백래시의 변모 양상과 페미니즘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논의됐다. 백범넷은 백래시에 맞서기 위한 여성시민단체들의 연대 조직으로, 이달 출범했다.
토론 참가자들은 달라진 백래시 동향에 주목했다. 과거 특정 개인의 활동을 뒤에서 지지하는 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조직화, 결집화가 두드러진다는 시각에서다. 텔레그램 사태 이후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인식에 대한 반발과, 고용 불안, 병역문제 등이 불을 지핀 평등에 대한 반감 등이 결집의 기반이 됐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단체가 반여성주의 성향의 신남성연대다. 이곳 대표는 백래시 규탄 시위 현장에 나타나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이효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무국장은 "그동안 가족을 먹여 살리고 희생해 온 건 남성인데, 지금은 오히려 여성 상위 시대이며 페미니즘은 여성 우월주의 사상이므로 피해자는 남성이란 인식이 20, 30대 남성들 사이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온라인 공간이 능숙한 이들은 이슈파이팅하듯 집단행동을 기획한다"고 설명했다.
백래시를 정치 동력으로 활용하는 일부 정치인이 세력화에 힘을 보탰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사회에 성차별은 없고 여성가족부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저격하는 비판이다.
이선희 한국젠더연구소 대표는 "백래시 세력을 정치적 공간으로 가져와 정치 전면에 올라선 양태가 이전과 다른 질적 변화"라고 밝혔다. 용 의원은 "지난 재보궐 선거를 계기로 '이대남'이라 불리는 이들이 주목을 받고 정치권 백래시 물결도 심상치 않다"며 "여성운동 성과마저 부정하겠다는 혐오의 정치"라고 강조했다.
커뮤니티 특정 세력의 주장이 퍼지면서 손가락 모양이 남성혐오가 되고 페미니즘은 불공정으로 연결되는 현실이다. 평등과 정의에 대해 건설적으로 토론하고 페미니즘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연대 방식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여성단체들은 진단한다. 성차별뿐 아니라 사회 곳곳 소수자들을 포용하는 방식으로 연대를 확장하고, 확장과 결집으로 자생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취지다.
황연주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사무국장은 "백래시로 차별과 폭력 문제는 간과되고, 동성애자, 난민, 트렌스젠더 등 다른 소수자로까지 혐오가 퍼지고 있다"며 "이 사회의 모든 배제와 차별에 반대하는 교차적 연대를 통해 결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