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부 vs '지하정부', 정통성 싸움 시작됐다

입력
2021.08.2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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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세력에 맞서고 있는 민주세력의 중심이자 ‘지하정부’ 격인 국민통합정부(NUG)가 이달 20일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사법권 행사를 수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앞서 두와 라시 라 NUG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달 17일 자신의 명의로 이 같은 의사를 담은 문건을 ICC 사무국장에게도 제출했다. 그동안 국제인권단체들과 로힝야족 단체들은 미얀마 군부가 저지른 2017년 로힝야 제노사이드(집단학살) 범죄를 국제 심판대에 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는데, 그중 한 곳이 바로 ICC다.

그러나 미얀마는 ICC 비준 국가가 아니다. ICC가 미얀마 영토 내에서 벌어진 국제범죄에 관여할 법적 근거는 현재로선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이 미얀마를 ICC에 제소하는 방안도 있지만, 이 또한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실현 가능성이 낮았다. 그럼에도 ICC는 미얀마군에 쫓겨 로힝야족 70여만 명이 방글라데시로 피신한 사태와 관련, ICC 비준국인 방글라데시 영토 내에서 발생한 ‘강제 이주’ 문제에 대해 2019년 11월 조사권을 발동했다. 파투 벤수다 ICC 검사장의 적극적 노력으로 가능했던 일이다.

NUG의 이번 ICC 사법권 수용 선언은 두 가지 측면에서 눈여겨봐야 한다. 우선 로힝야 대학살의 핵심 인물이자 지난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켜 미얀마를 저강도 내전 상황으로 몰아간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을 국제법정에 세울 수 있느냐다. 2019년 11월 아프리카의 무슬림 국가인 감비아가 이슬람협력기구(OIC)를 대표해 미얀마를 집단학살 혐의로 또 다른 국제법정인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한 적이 있지만, ICJ는 국가 간 분쟁을 다루는 법정이라 특정 개인을 형사처벌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민 아웅 흘라잉 등 군부 핵심 인물들을 기소하려면 개인에 대한 형사 처분이 가능한 ICC 제소가 필요했다.

두 번째는 향후 NUG와 ICC의 협의 과정이 미얀마 합법 정부로 거듭나려는 NUG의 노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다. ICC 재판 회부를 위한 관할권 등을 약속한 ‘로마규정’ 12조 3항은 “로마규정의 당사국(비준국)이 아닌 국가의 수락이 요구되는 경우, 그 국가는 사무국장에게 제출하는 선언에 의해 당해 범죄에 대한 재판소의 관할권 행사를 수락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직 ‘임시 정부’ 성격이 짙은 NUG가 ICC 사법권 수용을 ‘비준’이 아니라 ‘선언’만 했다는 건, 규정 내에서 최대 역량을 발휘해 ‘합법 정부 플레이’를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4월 16일 내각을 꾸리고 공식 출범한 NUG는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ICC 사법권 수용 선언은 그 시험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때마침 로힝야 대학살 4년을 맞은 지난 25일을 전후로, “NUG를 합법 정부로 인정해야 한다”는 미얀마 시민들의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미얀마 군부와 NUG 간 정통성 다툼은 다음 달 14일 열리는 제76차 유엔총회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다. 양측 모두 자신들이 임명한 유엔 주재 대사를 공식적으로 인정해 달라며 유엔총회 자격심사를 요청한 상태다. 쿠데타 직후 설립된 군정 최고의결기구 국가행정평의회(SAC)가 지난 1일 ‘과도정부’를 선포하고,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자신을 총리로 ‘셀프 임명’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불법적으로 권력을 찬탈한 군사위원회 이미지를 ‘과도정부’와 ‘총리’로 포장하는 동시에, 장기집권 의도까지 반영한 일석이조의 조치였다.

유엔총회가 어떤 인물을 유엔 주재 미얀마 대사로 정식 승인할 것인지는 9개국으로 구성된 자격심사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양측 후보에 대해 국가원수, 정부수장 혹은 외교장관 등 누구의 승인하에 파견된 것인지 살펴볼 뿐 아니라, 필요 시 유엔총회에서 각 회원국들의 의견을 묻는 투표를 할 수도 있다. 최종 결과는 늦어도 올해 12월에는 나와야 한다. 이 결정이 유엔헌장에 위배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와 관련해 전직 유엔 미얀마 전문가 3인으로 구성된 ‘미얀마 특별자문위원회(SAC-M)’는 16일 보고서를 통해 네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첫째, NUG가 받아들여지는 경우다. SAC-M은 유엔총회가 1991년 쿠데타로 집권한 아이티 군사정권에 대해 “불법적으로 권력을 찬탈한 군부이므로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정했던 전례를 소개했다. 1973년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체제를 이유로 유엔총회 참석 자격을 박탈당한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좋은 선례다. 현재 로힝야족은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州)에서 이동의 자유를 봉쇄당하고, 중심도시 시트웨의 외곽 강제 격리 구역에서 거주하고 있다. 로힝야 이슈의 중요한 본질 중 하나가 인종차별이라는 점에서 남아공은 적절한 판례로 작용할 수 있다.

둘째, 군부 대표가 유엔총회의 인정을 받는 경우다. SAC-M은 이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현재 쿠데타가 성공했다거나 완결된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 그 근거다. 게다가 유엔총회는 지난 6월 18일 미얀마군의 폭력적 진압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군부에 보내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셋째, 결정을 연기하고 현재 유엔 대사를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다. 이 경우, 초 모 툰 대사가 NUG를 지지했다는 사실은 NUG에 유리한 조건이다. 초 모 툰 대사는 2월 26일 유엔총회에서 저항을 상징하는 세 손가락을 들고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한 바 있다. 그는 지난 14일 NUG 정부의 ‘여성·청소년·어린이부’의 에이 틴자 마웅 차관과의 인터뷰에서 “군부가 유엔에 자리를 얻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며 상당한 자신감을 보였다.

마지막은 아예 공석으로 두는 안이다. 하지만 SAC-M은 NUG가 받아들여지거나 현 대사를 유지하는 두 가지 시나리오에 무게를 두고 있다. ‘궁극적으로 군부는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게 SAC-M의 진단이다. “선거가 아닌 ‘무장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이고 쿠데타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다만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유엔총회에서 자격 요건이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곧장 NUG를 미얀마의 합법 정부로 공인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합법 정부로 나아가려는 NUG의 싸움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