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신인 작가의 첫 책 출간을 기념해 출판사가 기자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성대한 간담회를 열었다. 스타도 원로 작가도 아닌 신인의, 그것도 첫 책에는 다소 호들갑스러워 보이는 자리였다. 그러나 2년 뒤, 그때의 호들갑은 한 시대의 기록이 될 작가 탄생에 마땅한 출정식이었음이 증명됐다. 그해 주요 일간지와 서점의 ‘올해의 책’을 휩쓸었고, 현재까지 총 20만 부가 팔린 김초엽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야기다.
첫 책에 쏟아진 스포트라이트가 부담으로 작용하진 않았을까? 2년 만의 새 책이자 첫 장편소설인 ‘지구 끝의 온실’ 출간을 기념해 25일 가진 인터뷰에서 김초엽 작가는 “예상치 못했던 엄청난 반응에 책을 내고 일 년 정도는 부담감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든 첫 책과 비교되겠구나 싶었죠. 그런데 소설을 계속 써 나가다 보니 그런 부담은 자연히 사라졌어요. 가장 최근에 쓴 글일수록 만족스럽다는 걸 알게 됐고, 스스로 만족할수록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지구 끝의 온실’은 멸망한 세계에서 식물을 통해 희망의 싹을 틔워내는 소설이다. 살아 있는 존재라면 무엇이든 순식간에 죽게 만드는 ‘더스트’가 지구에 내려앉은 2058년과 그로부터 약 70년 뒤인 2129년 더스트를 없애고 재건에 성공한 지구가 배경이다.
두 세계를 연결하는 것은 ‘모스바나’라는 미지의 덩굴 식물이다. 모스바나의 이상 증식 현상을 추적하던 2129년의 과학자 아영은 더스트 시대 모스바나를 약초로 활용하며 ‘랑가노의 마녀들’이라 불려온 아마라와 나오미 자매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더스트 시대 식물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가 있었고, 그곳에서 개량된 더스트 저항종 식물들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공교롭게도 김초엽 작가의 아버지는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했고, 작가의 이름 역시 풀초(草), 잎엽(葉) 두 한자를 조합해 만든 것이다. 왠지 예전부터 식물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을 것 같은데, 정작 작가는 “오히려 학창시절 생물시간에 식물 얘기가 나오면 무척 지루해할 정도였고, 이 작품을 쓰기 전에는 식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며 웃었다.
“소설을 쓰려고 식물에 대해 공부하며 인상적이었던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식물 인지 편향’이에요. 인간이 동물 중심주의적인 사고를 하기 때문에 식물의 중요성을 간과한다는 거죠. 게다가 식물은 ‘풍경’으로 뭉뚱그려지기 때문에 개개의 식물 연구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지 못해요. 식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후로 나를 둘러싼 환경이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죠. 풍경 속 구체성을 인식하기 시작하면 환경과 나의 상호작용도 감각할 수 있게 돼요.”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조금씩 결함을 갖고 있고, 완전무결한 희망을 꿈꾸지도 않는다.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기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불신과 절망이 뒤엉킨 가운데 작은 희망이 움튼다. 작가는 “책을 쓰며 세상의 변화가 마치 식물의 속도로 일어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세상의 변화는 너무 지지부진하고, 때로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식물도 매일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긴 힘들지만, 어느 순간 바라보면 갑자기 자라 있잖아요. 매우 긴 시간이 걸리지만 결국엔 풍경을 바꾸는 게 식물이듯, 세계의 주요 변화도 그렇게 느리게 올 뿐 결코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에요.”
소설은 작년 여름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때 쓰기 시작했다. 소설이 재난 이후 세계를 그리고 있는 만큼 현실과 지나치게 얽혀 읽히진 않을까 우려했지만, 어느 순간 거리를 두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코로나19와 맞서는 인류를 보며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인간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생각하며 소설을 썼다.
“소설에서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건 과학의 힘만도, 식물의 힘만도 아니에요. 비인간 존재인 식물과 인간 존재가 맺는 관계가 핵심이죠. 코로나19도 그렇지 않을까요. 백신은 지금의 상황을 단숨에 바꿀 수 있겠지만 그런 비인간 존재의 기적에만 기댈 순 없어요. 인간이 방역망을 함께 잘 지켜야만 이 재난이 언젠간 끝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