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무비: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은 한 시대를 뒤흔들었던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다. 1시즌은 1980년대 영화 '더티 댄싱' '나 홀로 집에' '고스트 버스터즈' '다이 하드'이고, 이번에 공개된 2시즌은 1990년대의 '백 투 더 퓨쳐' '귀여운 여인' '쥬라기 공원' '포레스트 검프'이다. 1년간 개봉을 했으며 지금도 수익을 올리는 영화, 영화계의 흐름을 바꾸어놓은 영화, 대중의 사고를 뒤흔든 영화들의 제작 과정을 보는 일은 한없이 즐겁고 감동적이다.
장르도, 성공의 이유도 제각각이지만 이 영화들의 공통점을 하나 꼽자면, 새로움이다. 배우가 유명하지 않다거나, 내용이나 주제가 인기가 없는 등 다양한 이유로 제작이 어려웠던 영화가 많았다. 일사천리로 제작된 영화는 이미 거장이었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 정도다. '백 투 더 퓨쳐' 3부작, '로맨싱 스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의 성공으로 흥행 감독이 된 로버트 저메키스도 '포레스트 검프'의 흥행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제작에 난항을 겪었다. 저메키스와 주연인 톰 행크스가 사비를 투자해 부족한 제작비를 충당하고 겨우 만들어질 수 있었다.
'나 홀로 집에'는 9세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를 관객이 좋아하지 않는다며 영화사에서 부정적인 의견을 냈고, 잠시 제작 중단까지 되었다. '더티 댄싱'은 여성 작가에, 여성 감독이었고 낙태를 한 여성이 나오기에 메이저 영화사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비디오를 제작하다가 극장용 영화에 뛰어든 베스트론이 처음 만든 저예산 영화였다. '다이 하드'의 브루스 윌리스는 TV 코미디쇼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개봉 후에도 한동안 저평가됐다. 액션 스타는 아널드 슈워제네거, 실베스터 스탤론 같은 근육질이어야 한다고 믿던 시대였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미래를 만들었다. '다이 하드'는 액션영화의 흐름을 바꾸었다. 슈워제네거의 '코만도', 스탤론의 '람보' 시리즈처럼 무조건 부수고 폭파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유머와 개성적인 조연들의 조화가 돋보이는 다채로운 액션영화가 만들어지는 시발점이었다. '더티 댄싱'은 1960년대의 청춘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세대의 갈등을 보여주고, 주체적인 여성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묘사하는 영화의 흥행이 가능함을 증명했다. "이건 힘들어. 이건 안 돼"라는 부정의 벽을 이겨내고 엄청난 흥행을 이룬 영화들은 모두 전설이 되었다.
'쥬라기 공원'은 마이클 크라이튼 원작,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라는 성공의 필수요소를 갖춘 영화이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공룡'이었다. 스필버그는 '스타 워즈' '로보캅' 등에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한 필 티펫을 기용했지만 결국 공룡은 ILM의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졌다. '쥬라기 공원'의 공룡은 이후 영화의 제작 과정 자체를 바꿔놓았다. '반지의 제왕'과 '매트릭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도 CG로 만들어진 공룡이 없었다면 아직 없거나 한참 더 늦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성공의 이유를 다루는 이야기에는 늘 위험이 존재한다. 성공담의 모든 것을 긍정하고,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성공에는 운이 필요하고, 우연의 결과도 존재한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아이디어와 노력, 운이 적절하게 황금비율로 섞였을 때 위대한 결과가 나온다. 문제는 만드는 과정에서는 아무도 결과를 모른다는 점이고.
'귀여운 여인'은 시나리오 작가 조 로튼에서 출발했다. 조 로튼은 B급 액션영화인 '식인녀들이 사는 죽음의 아보카도 정글'의 각본을 쓰고 감독을 했고, '언더 씨즈'의 각본을 맡았다. 로맨틱 코미디를 쓰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가 살던 집이 할리우드 대로에 있었고, 몸을 파는 여성들이 많이 있었다. 심야에 자주 가던 도넛 가게에서 그녀들을 만나고 대화도 했다. 조 로튼은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오하이오와 펜실베이니아 등에 위치한 미국의 전통적인 공장지대가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곳을 러스트 벨트라고 부르는데, 로튼이 만난 여성들은 그곳 출신이 많았다. 공장이 문을 닫고, 도시가 몰락하면서 벼랑에 내몰린 젊은 여성들이었다.
조 로튼은 남자 주인공으로 1980년대에 각광받은 월가의 전문 기업 사냥꾼을 생각했다. 부진한 기업을 사들이고 팔고 하면서 노동자들을 집단 해고하거나 아예 회사를 망하게 하는 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남자. 그는 러스트 벨트의 몰락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여성 주인공은 러스트 벨트 출신인 거리의 여인. 로튼은 직접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쓴다. 거리에서 만난 남자와 라스베이거스의 호텔 스위트룸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헤어지며 3,000달러를 받았다는 실화. 처음 쓴 시나리오의 제목은 '3,000'이었고, 로맨틱코미디가 아니라 약간 어둡고 쓸쓸한 멜로영화였다. 사회적인 배경이 진하게 들어간.
프로듀서인 게리 골드스타인은 '3,000'이 메이저영화사에서 만들기에는 무거운 영화라고 생각해 '더티 댄싱'을 만들었던 베스트론에 가져간다. 그런데 베스트론이 파산해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터치스톤에 가게 된다. 당시 디즈니는 아이들 애니메이션만 만드는 회사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인용 영화를 제작하는 터치스톤을 세워 의욕을 보이던 참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아무리 어른을 위한 영화라고 해도, 디즈니가 과연 심각하고 사회비판적인 이야기를 허락할 수 있을까? 게다가 감독은 TV 시트콤 '모크와 민디'로 유명한 게리 마셜로 정해졌다.
시나리오를 쓴 조 로튼은 다행히, 과감하게 제작사의 의견을 수용했다. 더 밝고 경쾌하게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과정도 쉽지 않았다. 게리 마셜은 영화의 톤을 어떻게 갈 것인지 확실히 정하지 못했고, 배우들의 즉흥적인 연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심각한 톤, 밝은 톤 등 몇 개의 버전으로 하나의 장면을 찍었다. 게리 마셜이 위대한 로맨틱 코미디영화를 연출한 것은 분명하지만, 편집감독의 역할이 막중했다는 것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영화에서 편집은, 때로 영화의 모든 것을 결정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감독은 중요하지만, 결코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작품일수록 더욱 그렇다.
'무비: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의 원제는 'The movies that made us'다. 우리가 사랑하여, 결국 우리를 만들어낸 영화들이다.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줘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위대한 영화들. 과거의 추억을 무한대로 되살리는 동시에 강한 깨달음도 있다. 모든 성공에는, 그만큼의 절실한 드라마가 있다. '포레스트 검프'의 제작비를 초과하지 못하게 감시하라고 보낸 PD가 너무 각본을 좋아했기에 오히려 비밀리에 추가 촬영을 하도록 도왔다는 에피소드처럼, 모든 위대한 여정에는 한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위대한 역할이 숨어 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생각하고 조금씩 변하는 나, 우리의 역할까지도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