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여성 외출 금지령', 임시 조치라고 하지만…

입력
2021.08.2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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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받지 않은 일부 대원들, 폭력 행사 위험"
여성의 취업·교육 보장 선언에도 불신 여전
세계은행도 '여성 인권 침해' 우려에 지원 중단

아프가니스탄 재집권과 함께 '여성 억압 통치' 우려에 선을 그었던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간 여성들에게 "당분간 외출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여성 인권 존중'이라는 새로운 정책 방향에 익숙하지 않은 대원들이 과거와 같이 여성들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다. 그러나 여성 안전을 고려한 '임시 조처'일 뿐이라는 설명에도 불구, 탈레반을 향한 아프간 안팎의 불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24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탈레반 소속) 보안군이 여성을 대하는 법에 대해 훈련받지 않았다"며 "안전 조치가 완벽하게 갖춰질 때까지 여성들은 집에 머물 것을 요청한다"고 발표했다. 여성들이 직장에 갈 수 없더라도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앞서 이슬람 율법(샤리아법) 안에서 여성의 교육·직업 생활을 보장하겠다고 공언했던 약속을 의식한 듯, 그는 "매우 일시적 절차"라는 점을 강조하며 "군이 여성을 해치거나 괴롭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탈레반은 이달 15일 아프간 정부를 무너뜨린 뒤, 과거 집권기(1996∼2001년)의 폭압 통치 방식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면서 '여성 인권 침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 왔다. 여성들이 직업·교육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남성 보호자 없이는 집을 나갈 수도 없었던 20여 년 전과는 달라질 것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 같은 탈레반의 요구는 '여성 억압의 또 다른 시작'이라는 우려가 크다. 헤더 바 휴먼라이츠워치(HRW) 여성인권 부국장은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보안·치안이 더 좋아지길 기다리면 여성들이 더 많은 자유를 가질 수 있다는 설명인데, 그런 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과거에도 비슷한 주장을 했던 탈레반을 아프간 여성들은 더는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국 곳곳의 현 상황은 이런 불신을 더 키운다. 지난주까지 아프간에 체류했던 국제앰네스티의 선임고문 브라이언 카스트너는 "탈레반이 다른 방식으로 정부를 운영하려면 '대원들 재교육'이 필요한데, 현장에선 그럴 조짐이 전혀 안 보였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에선 여성들이 이미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고, 탈레반 대원들이 집집마다 지난 정부에서 일했던 주민 명단을 들고 다니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탈레반에 '실질적 변화'를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압박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 세계은행은 탈레반 집권 이후의 아프간 발전 전망과 현지 여성들이 처한 현실 등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면서 아프간 지원 중단을 결정했다. 세계은행이 2002년부터 아프간에서 진행한 개발 사업은 24개가 넘고, 투입한 자금도 53억 달러(약 6조1,877억 원)에 달한다. 유엔 인권이사회도 전날 특별회의를 열고 아프간 여성과 소녀들의 권리에 대한 확고한 약속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진달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