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 악당 김재범 "황정민 형이 눈이 묘하다며 오디션 제안"

입력
2021.08.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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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악역 눈길... 코미디 장기 뮤지컬 베테랑

낯설다. 주요 배역인데, 영화나 드라마로 만났던 얼굴은 아니다. 영화 ‘인질’의 관객 대부분은 악당 최기완(김재범)을 향한 물음표를 품으며 극장 문을 나설 듯하다. 최기완은 유명 배우 황정민(황정민)을 납치한 후 몸값을 요구하는, 영화 속 주요 인물이다. 배우는 신인 같으나 연기가 황정민에 밀리지 않는다. 그럴 만도 하다. 200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해 무대에서 17년 동안 실력을 다졌다. 18일 개봉한 ‘인질’은 7일 연속 흥행 1위를 내달리며 74만1,289명(24일 기준)을 극장으로 모았다. 잔혹하면서도 교활한 모습으로 소름을 빚어낸 김재범의 공이 크다. 최근 화상으로 그를 만나 영화와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질’은 김재범의 세 번째 영화 출연작이다. 이전까지 스크린 연기 이력은 ‘마차 타고 고래 고래’(2017)와 ‘데자뷰’(2018)가 전부였다. ‘인질’ 합류는 뜻밖이었다 영화사로부터 오디션 참여 제안을 받았다. 나중에 알아보니 황정민의 추천이 있었다. 김재범은 황정민이 연출하고 주연까지 맡은 뮤지컬 ‘오케피’에 출연한 적이 있다. “캐스팅 후 얼핏 듣기로 정민 형이 ‘눈이 묘하게 생긴 애가 있다’며 저를 추천했다고 해요.”


"오디션 통과만으로도 기뻤다"

두 차례에 걸친 오디션 경쟁은 치열했다. 최기완 등 범인 5명을 뽑기 위해 배우 1,000명이 몰렸다. 김재범은 “오디션 기회 자체가 드물어 참여만으로도 기분이 좋은데 운 좋게 캐스팅 됐다”고 했다. 역할의 비중이 큰 최기완을 연기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좀 더 유명하고 연기 잘하는 배우의 몫”이라고 여겼다.

최기완은 동료 4명과 함께 연쇄 납치 행각을 벌인다. 그는 일당의 두뇌이면서 리더다. 냉혹하고 치밀한 성격에 폭파 기술을 지녔다. 성질이 거칠고 급한 동료들조차 냉혈한인 그에게 쉬 반기를 못 든다. 최기완과 황정민이 머리와 몸으로 부딪히면서 ‘인질’의 긴장감은 팽창한다. 영화는 상영시간 94분으로 인물들의 입체적 면모보다 이야기 전개와 서스펜스 제조에 집중한다. 시나리오에도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없었다. 김재범은 최기완이란 인물에 과거라는 살을 따로 붙였다.

“최기완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자존감으로 버텨 온 인물입니다. 1986년에 태어나 학창시절 성적은 나쁘지 않았고, 중학교 때 전학을 많이 다녔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고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았으나 사랑이라 여기며 자랐고요. 고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대학 진학을 못 하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사장에서 발파 일을 배웠다고 세세하게 인물을 설정하고 연기를 했어요.”


"내가 싫어질 수 있어" 아내에게 경고

김재범은 아내가 영화를 보기 전 경고를 했다. “내가 싫어질 수 있어. 정말 꼴 보기 싫게 나와.” 그는 “아내가 영화 속 제가 너무 못 생겼고, 평소와 달리 인상이 아주 안 좋다고 했다”고 전했다. “기분이 좋았죠. 제가 봐도 못 돼 보이고, 나빠 보였거든요. 저의 다른 면을 뽑아내 보여줄 수 있어서 영화를 보고 정말 만족했습니다.”

김재범은 어려서부터 막연히 배우를 꿈꿨다. “배우가 꿈이어서 성룡(청룽) 영화를 비디오가 닳도록 보던 형”의 영향이 컸다. 고교 때 연극부 활동을 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에 “운 좋게” 진학했다. “나도 노래방에서 노래 좀 하는데”라는 생각에 ‘지하철 1호선’ 오디션에 지원하면서 뮤지컬 인생이 시작됐다. “노래가 힘들어서 뮤지컬은 못하겠다”라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으나 ‘쓰릴 미’와 ‘김종욱 찾기’ 등 화제작에 출연하며 공연계 스타로 자리잡았다. ‘인질’ 관객이라면 믿지 않겠지만 장기는 코미디 연기. 김재범은 “관객을 웃기고 싶은 욕심이 강하다”며 “코미디는 객석에서 반응이 바로 오니까 빵 터졌을 때 쾌감이 남다르고, 안 터지면 다음에 어떻게 할까 도전의식을 자극한다”고 했다.

김재범은 “여름 흥행의 남자 황정민과 같이 대작에 나온 것만으로도 아직 현실감이 없다”고 했다. ‘인질’ 이후 그는 출연 제안이 밀물처럼 들어오는 현실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악역을 했으니까 착하고 재미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면서도 “어떤 역할이든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접근하려 한다”고 말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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