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로 넘겨진 건강영향조사..."오염 피해 더 방치될 것" 반발

입력
2021.09.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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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부터 환경부 조사권, 시도지사에게 이관
전문성 및 인프라 부족에 지역사회 폐쇄성까지
"업체 편드는 지자체, 제대로 조사될지 우려"

[국가가 버린 주민들]<1부>이들이 겪어온 고통 ④화 돋우는 지자체


편집자주

어느 곳에 사느냐는 권력의 척도가 됐다. 소각로·공장·매립장이 들어서며 병에 걸리고 목숨을 잃었다는 사람들. 암으로 수십 명이 사망한 곳도 있다. 그런데 목숨에도 등급이 매겨진 걸까. 정부는, 사회는 조용하다. 서울 한복판이라면 어땠을까. 지난 10년 주민들이 '인근 시설로 환경이 오염돼 질병에 걸렸다'며 환경부에 건강영향조사를 청원한 곳은 8곳에 이른다. 대책 없이 방치된 이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지난 10년 동안 정부에 주민건강영향평가 청원을 한 8개 지역 주민들은 처음부터 정부에 달려간 건 아니다. 아무리 지방자치단체에 민원을 넣어도 달라지는 게 없자 결국 환경부를 찾은 것이다. 장점마을만 해도 무려 17년을 지자체와 싸웠으나 지자체는 좌절감만 안겼다.

그런데 이제 환경부에 조사를 청원할 수 없게 됐다. 올해 7월부터 시도지사가 주민들이 청원한 건강영향조사를 실시하도록 환경보건법이 바뀌었다. 환경부 장관은 2개 이상의 광역시도에 걸친 문제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조사를 한다. 2009년 환경보건법 제정 후 13년간 환경부 장관이 담당했던 조사 권한이 지자체로 넘어간 것이다. 환경부는 “지자체가 지역 환경보건 문제를 세세히 파악해 신속히 대응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일제히 “환경부의 책임 회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건환경 분야, 특히 오염 물질 장기 노출에 의한 건강 피해 조사는 일반 행정과는 다른 고도의 전문 분야인데 관련 인프라도 없는 지자체에 조사를 떠넘겼다는 것이다.

오경재 원광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건강영향조사를 하려면 관련 조직과 역량, 예산, 지역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전문성 등을 갖춰야 하지만 지자체는 준비가 안 된 상황”이라며 “환경부가 명분만 앞세워 지자체에 책임을 떠넘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환경부에서 지자체 담당자들에게 건강영향조사 관련 교육을 실시했고 전문가들 추천 명단도 공유했다”며 “제도가 안착될 때까지는 환경부가 지자체를 행정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환경부가 10여 년간 주민 청원으로 실시한 건강영향조사는 제대로 된 조사는 한두 개도 안 될 정도로 실패한 영역”이라며 “왜 실패했는지를 평가, 보완한 후 시범사업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인프라와 역량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권한을 넘겨야 하는데, 조사 권한만 넘겨줬다”고 지적했다.

지자체가 조사에 적극 나설지도 의문이다. 임형택 익산시의원은 “장점마을 조사 때도 지자체 공무원들은 책임을 면하려고 인과관계가 없다는 쪽의 근거만 연구기관에 제시하며 원하는 결과를 유도하려 했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의 강한 연고주의와 폐쇄성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임 의원은 “지방의 환경업체들은 이미 지역사회에서 기득권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지자체 환경직 공무원과 폐기물 업체 등의 임직원은 공적으로는 감시하는 공무원과 감시받는 업체의 관계지만, 밖에 나가면 환경공학과 동문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역사회는 이런 문제가 크기 때문에 투명성 담보를 위해서라도 환경부가 조사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는 조사 결과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오경재 교수는 “조사 결과를 해석할 때 애매하고 미묘한 부분이 있는데, 전문성이 없거나 독립된 기관이 아닐 경우 오히려 문제를 증폭시켜 지역사회 갈등만 유발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지자체는 피해 주민들 지원에서부터 실패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건강영향조사 청원을 받은 지자체 8곳 중 지원 조례를 마련한 곳은 전북 익산시뿐이다. 소극적이던 익산시와 별도로 시의원들이 나선 결과였다. 인천시는 조사 결과가 나온 뒤에야 '지원을 하려면 조례에 근거가 필요하다'며 뒤늦게 관련 논의에 들어갔다. 그러나 2년째 아무것도 처리되지 않고 있다.

손문선 전 익산시의원은 “당시 지역사회에서 익산시의 관리감독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 비판을 감당할 수 없게 된 후에야 시가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말했다. 지난해 감사원은 익산시가 오염물질 배출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가가 버린 주민들

<1부>이들이 겪어온 고통

①질병이 덮쳐오다

②배상은 어디에

③이웃도, 생계도 잃다

④화 돋우는 지자체

※매주 월·목요일 연재합니다.

남보라 기자
익산= 김현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