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그친다는 ‘처서(處暑)’까지도 우려됐던 여름철 전력 공급난은 없었다. 전력당국은 한시름 덜었지만, 올여름 정부의 전력난 예측으로 불거졌던 ‘호들갑’ 논쟁과 섣부른 원자력발전소 가동에 따른 정책 일관성 훼손은 오점으로 남았다. 이에 따라 전력 공급 방식에 대한 유연성 확보와 보다 현실적인 전력수급 정책이 과제로 주어졌다.
24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최대 전력수요는 79.3기가와트(GW)에 공급 예비력은 19.6GW, 예비율은 24.6%를 기록하면서 안정적인 전력수급이 이뤄졌다. 전력수급 대책기간은 늦더위를 대비해 다음 달 17일까지 이어지지만, 태풍 ‘오마이스’ 북상 영향으로 기온이 떨어지면서 사실상 올여름은 전력 대란 없이 지나갈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1일 ‘여름철 전력수급 전망 및 대책’을 통해 8월 둘째 주(9~13일)를 전력피크(최대 부하) 시기로 예측했다. 정부가 내다본 이 시기 전력수요 상한전망은 94.4GW(기준전망 90.9GW), 예비력은 4.8GW(예비율 5.1%)로, 예비력이 5.5GW 아래로 내려갈 경우 발령되는 ‘전력수급 비상단계’가 8년 만에 내려질 가능성까지 대두되면서 전력 대란 우려도 제기됐다.
하지만 정작 8월 둘째 주 최대 전력수요는 81.8~86.4GW, 예비력은 12.6~18.3GW를 기록, 전력수급은 ‘안정적’이었다. 예비율도 14.6∼22.4%로 넉넉했다. 실제 전력수요가 전망치를 크게 밑돌자, 정부가 지나치게 위기감을 키운 게 아니냐는 비판도 일었다. 산업부 관계자는 “8월 들어 기온이 떨어지면서 당초 전망보다는 낮은 수준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올여름 전력수급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정부의 전력수급 예측 이후 안전성 확보 등을 이유로 멈춰 선 원전 3기를 당초 계획보다 앞당긴 지난달 중순부터 가동하면서 정책 일관성에 오점도 드러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전력수급 전망 자체는 과거 30년간의 데이터를 활용한 자료로, 폭염이나 혹한이 오는 시기에 따라 수치는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라면서도 “다만 여름철에 원전 가동 준비가 안 돼 공급이 불안정해진 점은 돌아봐야 할 대목”이라고 짚었다.
총 24기의 국내 원전 가운데 3분의 1인 8기가 가동이 안 된 상태로 안전 문제상 중단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맞춰 멈춰 세웠단 주장도 있지만, 일단 여름철엔 최대한 (원전이) 가동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어야 했다는 게 유 교수의 설명이다. 유 교수는 “원전 3기를 서둘러 가동한 점은 정부가 탈원전 정책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된 셈”이라며 “정말 원전 안전성에 문제가 있었다면 가동허가를 내주기보다, (전력수요가 많은 기업 등에) 전력 사용 감축 협조를 구하고 보상을 하는 방식으로 가는 쪽이 옳은 방향이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원안위에 따르면 신월성 1호기와 신고리 4호기, 월성 4호기는 지난달 16일(임계 기준)부터 순차적으로 가동을 시작하면서, 전력 최저예비력 주간(7월 4주) 초반부터 전 출력에 도달했다.
업계에선 혼란을 야기한 정부의 올여름 전력 정책에 대해선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당장 내년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전력수급의 유연성 확보와 더불어 현실에 맞는 세심한 정책으로 혼선을 최소화해야 한단 얘기다. 또 가정용을 포함한 소규모 태양광 발전설비에서 생산한 전력량을 파악하기 시작한 만큼 재생에너지 비중을 어느 정도까지 늘릴지도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는 해외로 전기를 팔 수도 없고, 사올 수도 없는 구조”라면서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에너지를 같이 늘리면 유지에 따른 비용 부담이 커지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합리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즉각적으로 가동할 수 있단 장점이 있는 석탄발전이나 가스발전을 ‘전력 예비군’처럼 운영해 전력공급의 유연성을 확보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