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기준 미국처럼 130/80㎜Hg으로 낮추자”

입력
2021.08.23 19:58
고혈압 전단계라도 관상동맥경화증 1.37배 높아

고혈압은 각종 심ㆍ뇌혈관 질환의 대표적인 위험 인자다. 하지만 나라마다 고혈압 진단 기준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수축기(최고) 혈압이 140㎜Hg 이상이거나 이완기(최저) 혈압이 90㎜Hg 이상일 때를 고혈압으로 규정한다. 반면 미국에서는 수축기 혈압이 130㎜Hg 이상이거나 이완기 혈압이 80㎜Hg 이상이면 고혈압으로 진단한다.

이처럼 나라마다 진단ㆍ치료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최근 고혈압 전(前) 단계와 관상동맥경화증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가 국내 의료진에 의해 발표됐다.

이승환ㆍ이필형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와 윤용훈 세종충남대병원 심장내과 교수 연구팀이 국내 기준 고혈압 전 단계 환자군과 정상 혈압군을 대상으로 관상동맥경화증 위험도를 분석한 결과다.

연구팀에 따르면 고혈압 전 단계 환자군이 정상 대조군보다 관상동맥경화증 발생 위험이 1.37배 더 높았다.

관상동맥경화증은 심장 관상동맥 벽에 콜레스테롤이 침착돼 생긴 단단한 섬유성 막 경화반이 파열되면서 만들어진 혈전 때문에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는 상태를 말한다.

관상동맥경화증이 생기면 심장에 산소와 영양소 공급이 어려워지면서 협심증, 심근경색, 심부전, 부정맥 등 심장 질환이 생기게 된다.

연구팀은 2007~2011년 서울아산병원 건강증진센터에서 관상동맥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한 수검자 가운데 심장 질환이 없고 항고혈압제를 복용한 적이 없는 4,666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대상을 미국 고혈압 가이드라인에 따라 정상군(120/80㎜Hg), 고혈압 전 단계(120~129/80㎜Hg), 1단계 고혈압(130~139/80~89㎜Hg), 2단계 고혈압(140/90㎜Hg)으로 나누어 분석했다.

그 결과, 관상동맥경화증 유병률이 정상 혈압군보다 고혈압 전 단계에서 1.12배, 1단계 고혈압에서는 1.37배, 2단계 고혈압에서는 1.66배 높았다.

미국심장협회와 미국심장학회는 2017년 고혈압 진단 기준을 140/90㎜Hg에서 130/80㎜Hg으로 낮춘 반면, 유럽과 우리나라는 기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국내 기준으로는 고혈압 전 단계로 분류되는 혈압이 미국 기준으로는 1단계 고혈압으로 분류되는 셈이다.

미국이 고혈압 가이드라인을 개정한 근거는 2015년 발표된 ‘수축기 혈압 중재 임상 시험(Systolic Blood Pressure Intervention TrialㆍSPRINT)’이다.

SPRINT 연구에서는 고혈압 환자들의 수축기 혈압을 120㎜Hg 미만 목표로 치료한 결과, 140㎜Hg 미만 치료군과 비교해 심혈관 질환 발생률 및 사망률이 유의하게 감소했다.

이승환 교수는 “우리나라의 고혈압 진단 기준은 20년 동안 바뀌지 않는데 세계적으로 고혈압 기준을 낮추는 추세이므로 우리나라도 고혈압 기준을 낮추려면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번 연구로 앞으로 국내 고혈압의 진단 기준을 다시 정하고, 심·뇌혈관 질환 예방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미국 고혈압학회지’ 최신호에 실렸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