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대통령 암살, 마약거래 때문?… "경호책임자, 마약사건 용의자였다"

입력
2021.08.23 04:30
NYT "구금된 경호책임자, 마약 거래 연루 의혹
전 대통령 처남·판사까지 개입된 것으로 알려져"
암살 사건과 마약 네트워크와의 연결고리 수사

지난달 초 발생한 조브넬 모이즈(53) 아이티 대통령 암살 사건에 대통령궁 경호책임자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해당 인물은 마약 범죄 용의자로 수년간 미국 당국의 추적을 받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수사당국은 아이티의 마약 범죄 네트워크와 이번 암살 사건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1일(현지시간) 전·현직 관리들을 인용해 "아이티 대통령 경호책임자인 디미트리 에라르는 미 마약단속국(DEA)이 수년간 수사해 온 사건의 용의자였다"고 보도했다. 미국에 유입되는 마약의 주요 관문인 아이티에서는 공무원이나 정치인, 사업가, 사법당국까지도 얽힌 마약 범죄 네트워크가 오랜 문제로 지적돼 왔다. 특히 에라르와 엮인 사건은 미셸 마르텔리 전 아이티 대통령의 처남과 현직 판사까지 거론되는, 역대 가장 큰 마약 사건 중 하나로 알려졌다.

문제의 사건은 2015년 4월 한 파나마 국적 화물선을 통해 설탕으로 위장한 대량의 코카인과 헤로인이 아이티의 항구로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수사를 위해 DEA와 아이티 반(反)마약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지만 이미 코카인 800㎏, 헤로인 300㎏ 등은 감쪽같이 사라진 상태였다. 당시 목격자들은 대통령 경호원 복장을 한 사람들이 해당 물품을 모두 가져갔다고 증언했는데, 대상자들 중엔 에라르도 포함돼 있었다.

수사는 제대로 된 성과 없이 흐지부지 끝났다. 당국이 회수한 마약은 고작 120㎏ 정도에 그쳤고, 주요 용의자 누구도 체포되지 않았다. 사건 당시 재임 중이던 마르텔리 대통령의 처남이 해당 마약 운반과 연결돼 있고, 에라르가 그와 함께 일했다는 의혹을 규명하는 게 수사의 핵심이었으나 아무것도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았다. 에라르가 가져간 불법 화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도 불분명하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전직 DEA 요원 키스 맥니컬스는 내부 고발을 하면서 "마약 관련 부패 고리가 최고위층까지 이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모이즈 대통령 암살 사건 수사에도 중요 단서가 될 공산이 크다. 에라르는 이미 핵심 용의자로 지목돼 구금돼 있다. 사건 직후 암살범들이 대통령 경호 인력의 별다른 제지 없이 대통령궁에 침입, 총격을 가한 것을 두고 내부 조력자설이 제기된 탓이다. 하지만 그가 수차례 중남미 지역을 방문한 것 외엔 범죄 행위를 입증할 증거가 전혀 없다. 이마저도 직접 증거는 아니다. NYT는 "암살 사건 조사를 돕는 일부 국제 관리들이 (에라르가 마약 범죄 용의자라는 점을 감안해) 마약 범죄 네트워크가 살인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라르의 변호인은 이와 관련된 질의를 에라르에게 전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아이티 경찰 대변인은 경찰 인력이 마약 밀매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2017년 2월 취임한 모이즈 대통령은 지난달 7일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대통령 사저에 침입한 무장괴한에 의해 암살됐다. 한 달이 넘도록 범행 동기와 배후 등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진달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