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난민 외면 말아달라" 호소하지만… 그리스, 40㎞ 장벽 설치

입력
2021.08.2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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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와의 국경에... '난민 수용 불가' 선언
'연을 쫓는 아이'의 작가, CNN 인터뷰서
국제사회에 "아프간 난민에 관심을" 호소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아프가니스탄 난민 발생 우려가 커지자 그리스가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고 나섰다. 이주민·난민 유입을 막기 위한 선제 조치다. 난민 수용 등 인도주의적 조처를 호소하는 일각의 목소리가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영국 BBC방송은 21일(현지시간) 그리스가 터키와의 국경에 40㎞ 길이의 장벽과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다고 보도했다. 아프간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한 이번 장벽 설치와 관련, 미칼리스 크리소코이디스 시민보호부 장관은 "향후 예상 가능한 충격을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만은 없다"며 "우리 국경은 침범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스 정부는 앞서 불법적으로 자국 영토에 들어온 아프간인들은 즉시 되돌려보내겠다는 방침을 공표한 바 있다.

장벽 설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최근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프간 이주민·난민의 급격한 증가를 경고한 직후 취해진 조처다. 당시 에르도안 대통령은 "아프간과 이란이 필요한 조처를 하지 않으면 (유럽으로의) 유입 사태는 불가피하다"면서 "주변국에 심각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지중해에 위치한 그리스는 이탈리아·스페인 등과 더불어 아프리카나 중동의 이주민·난민이 유럽으로 향하는 관문과도 같다.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촉발된 난민 위기 때는 약 6만 명이 그리스에 정착했다. 국경 통제를 강화해도 지중해 바닷길을 활용한 '보트 피플' 유입은 계속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에도 아프간 난민 수용을 촉구하는 호소는 이어지고 있다. 아프간의 비극적 근대사를 그린 유명 소설 '연을 쫓는 아이'의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는 이날 미국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간 사람들과 난민들에게 등을 돌릴 때가 아니다"라며 "모든 나라에서 국경을 열고 아프간 난민들을 환영해 달라"고 당부했다. 미국을 포함한 외국 병력과 함께하는 데 목숨을 걸고 일하다가 사지에 남겨진 아프간인들을 국제사회가 외면해선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의사 겸 작가인 호세이니는 1976년 아프간을 떠나 미국에 정착했다. 조국의 아픈 역사를 담은 그의 소설 '연을 쫓는 아이'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각국에 번역돼 총 3,800만 부가 팔렸다.

진달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