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버린 주민들]<1부>이들이 겪어온 고통 ③이웃도, 생계도 잃다
이곳 주민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거의 몸을 긁고 있었다. 피부병 때문이다. 한 80대 주민도 가슴께를 긁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우리 동네만 이게 뭐여. (비료공장) 연기를 맡아도 우리가 제일로 맡았어. 서울로 (시위) 갈 때도 다 따라다녔는디 이렇게 (보상에서는) 쏙 빼놓는다는 것은 너무 억울허지. 진짜 억울혀.”
지난 7월 29일, 전북 익산시 함라면을 찾은 기자에게 왈인마을의 주민은 이렇게 호소했다. 그는 요즘도 약을 복용하고 있다.
장점마을과 왈인마을, 장고재마을. 오랜 세월 동고동락해온 이웃마을들이다. 무엇보다 막대한 발암물질을 내뿜었던 비료공장(금강농산)에서 모두 약 500m씩 떨어진 비슷한 거리에 있다.
공장에서 나오는 연기 때문에 “새벽마다 시금털털한 냄새가 나고”(장고재마을 최일성씨) “임신한 것처럼 웩웩 토가 나오는”(장고재마을 정한수씨) 고충을 나눌 수 있는 것도 같은 공기, 같은 지하수를 마시는 이웃이었다.
수많은 암 환자가 나오고 사망하는 주민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한 것 역시 세 마을의 공통된 비극이었다. 최일성씨의 아내도 폐암을 앓고 있다. 그도 역시 팔다리를 긁고 있었다. 환경부 조사 보고서를 보면 "피가 날 때까지 긁어도 시원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다. 암도 피부암이 위암 다음으로 많았다.
그런데 이 공동체의 이웃들은 뿔뿔이 찢겼다. 의료비 지원 및 배상 대상이 장점마을 주민들에게만 국한되면서부터다. 환경부에 주민건강영향조사를 청원할 때, 장점마을 주민들만 참여했기 때문이란다. 오랜 기간 큰 낙담을 겪어 자포자기 심정으로 청원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왈인·장고재마을 주민들. 한 번 판단 착오의 대가는 컸다.
주민들이 한 번 실수했으니 이들의 목숨값은 못 본 체해도 될까. 조사 당시 왈인·장고재마을의 피해도 고스란히 알고 있었던 익산시, 그리고 환경부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게 합당한가. 오염 지역마다 행정기관의 무책임과 방관은 공동체의 갈등과 해체라는 비극으로 고스란이 이어지고 있다.
원래 세 마을 주민들은 늘 함께 싸워왔다. 2001년, 마을에 비료공장(금강농산)이 들어선다고 했을 때 주민들은 트랙터로 막아섰고, 공장 가동 후 악취가 진동하고 저수지 물고기가 집단 폐사했을 때도 함라면과 익산시, 환경부에 함께 민원을 제기했다. 공장에서 반경 1km 내, 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 살기 때문이다.
2017년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장점마을 주민들이 환경부에 건강영향조사 청원을 하면서부터다. 왈인·장고재마을 주민들은 17년간 지자체 및 정부와 싸워왔지만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자 오랜 패배감과 무력감에 나서지 않았다. 암 환자는 주민 수가 가장 많던 장점마을 40여 명(사망자 17명 포함), 왈인마을 17명(9명 사망), 장고재마을 12명(4명 사망) 등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두 마을 역시 조사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익산시는 상황을 잘 알고도 조사 범위 확대에 나서지 않았다. 환경부도 장점마을만을 대상으로 1년6개월간 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비료공장이 퇴비로만 사용해야 할 담뱃잎 찌꺼기(연초박)를 불법으로 건조하는 과정에서 발암물질이 배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공장 유해물질과 주민 암 발병 간 관련성이 인정된 것. 하지만 이 때 ‘주민’은 장점마을 주민만을 뜻했다.
이젠 조사 청원을 넣으려 해도 넣을 수가 없다. 금강농산이 이미 파산했고, 공장이 경매에 부쳐져 핵심 설비들이 전부 타 업체에 넘어갔다. 당시 시의원과 주민들, 전문가들이 “증거 보존을 위해서라도 시가 매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시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오히려 공장 앞에서 농성하던 주민들에게 익산시 측은 “설비 판매를 방해하면 45억 원 상당(설비를 구입하기로 한 업체의 피해액)을 주민들도 물어내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의료비 지급, 발암물질이 켜켜이 쌓여 있던 지붕을 교체해주는 환경 개선작업은 장점마을만 대상으로 했다. 보상금 지급 논의도 마찬가지. 건강영향조사 최종보고서는 “장점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장점마을 주변 오염물질 노출 가능 지역 주민에 대한 추가 파악 및 의료지원도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지만, 지켜진 적이 없다.
익산시가 18억 원을 들여 짓고 있는 행복복지센터(보건진료소 포함)도 장점마을에 짓고 있는데, 이웃마을도 이 곳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 정도가 혜택이다.
왈인마을 주민 박경선씨는 “우리 마을 주민들은 자기 돈으로 치료받고 있는 데다 지붕 교체나 보상에서도 다 배제됐다”며 “환경부에 갔더니 ‘시에 다 이관했으니까 시에 알아보라’고 하고, 익산시에 매일 가서 얘기하지만 담당자가 바뀌어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다보니 계속 시간만 간다”고 토로했다.
갈등의 원인은 지자체와 정부의 오랜 오염 문제 방치, 소극적이고 형식적인 조사 대상 선정과 좁은 피해 인정 기준인데, 그 상흔은 주민들이 오롯히 떠안는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며 비료공장과 암 발병 간 인과관계를 밝혀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전문가도 괴로워할 정도다. 오경재 원광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말했다. “제가 무슨 짓을 한 건지 가끔 후회될 때도 있어요. 주민 건강과 단합을 위해 조사를 벌였는데 오히려 갈등과 혼란이 왔으니까요. 인간적인 갈등이 삶의 질을 더 피폐하게 만들거든요.”
부산 강서구 생곡마을 주민 최치은(72)씨는 변해버린 마을이 믿기지 않는다. 최씨는 손자까지 6대째 이 곳에서 살았다. 마을은 20년 전만 해도 들판에서 함께 농사를 짓던 공동체였다. 그러나 지금은 온갖 이권 다툼으로 고소·고발이 난무한다. 30년 전 마을에 쓰레기매립장이 들어온 후 생겨난 일이다.
1996년 부산시는 생곡마을 인근에 쓰레기매립장을 유치하며, 주민 회유책으로 재활용시설 운영권을 주민들에게 넘겼다. 주민들이 직접 운영해 수익활동을 하고 주민 복지 기금으로 분배하라는 취지였다. 2008년 생곡자원재활용센터가 운영되기 시작했고 연간 총 21억 원(수익금 약 12억 원과 시 보조금 9억 원)이 주민대표 손에 맡겨지게 됐다.
'주민들이 알아서 돈을 나눠가져라'고 던져놓은 부산시의 행태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암 환자 20여 명 및 그외 질환과 악취 등을 호소하는 피해 구제는 뒷전이 됐고, 생곡 주민들은 이권 다툼에 병들어갔다. 행정기관이 꼼꼼히 피해를 따지고 분배해도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수익 분배의 권한이 주민대표 한 명에게 완전히 몰리면서 원성이 자자했다.
경찰관 출신으로 알려진 주민대표는 보조금 분배 현황을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얼마를 받는지 주민들은 전혀 알지 못한 채 10년 넘게 지냈다. 현재 주민 단체 중 하나인 생곡폐기물처리시설대책위원회(생곡대책위)의 김종원 사무국장이 부산시에 여러 차례 정보 공개와 중재를 요청했지만, 시는 “주민 사업”이라며 방치로 일관했다.
주민대표의 동의 하에 2007년 폐비닐 유화시설, 2008년 열병합발전화시설, 2013년 하수슬러지건조시설, 2016년 음식물 쓰레기 자원화 발전시설 등이 계속 생곡에 들어왔다. 김종원 국장 등 마을 주민들이 부산시에 항의해도 “주민 대표가 동의했으니 문제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한다.
2017년 주민대표가 김종원 국장으로 바뀐 뒤 확인한 보조금 분배 현황은 엉망이었다. 김종원 국장은 “자의적 기준으로 누구에겐 많이 가고 누구에겐 적게갔다”고 주장했다.
또 이전 주민대표는 마을 초입에 재활용업체를 운영하는 등 매립지를 통해 이권을 챙긴 정황도 눈에 띄었다.
주민 갈등이 격화됐고 현재는 각종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부산의 환경 단체들은 부산시의 무책임한 방치 탓에 주민 갈등이 깊어졌다고 비판한다. 부산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부산시가 매립지 도입 초기에 주민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운영권을 넘겨놓고는 관리·감독을 포기해 주민 간 이권 갈등이 방치됐다”며 “원활한 매립장 운영을 위해서라도 부산시가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산시는 “재활용센터 수익 분배는 주민 책임”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부산시는 부지와 운영권을 제공했을 뿐, 재활용센터의 설비는 주민들이 자비로 샀다”며 “이런 주민 사업의 보조금 분배 기준을 마련해 운영하는 것에 대해 시가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부산시가 뒤늦게 생곡마을 주민들을 집단 이주시킨 후 매립장을 공공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논의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한국일보는 이전 주민대표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접촉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현재 환경부의 건강영향조사를 받고 있는 강원도의 한 마을도 주민들이 두 갈래로 쪼개져 있다. 퇴비공장이 생긴 후 암 등 건강이 악화된 주민이 늘기 시작했고, 주민들은 퇴비의 원료인 가축 분뇨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를 원인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오염 지역’이라는 낙인 때문에 농·축산물 판로가 막힐 것을 우려해 오염 문제 공론화에 반대하고 있다. 퇴비공장 가동도 중단됐으니 더이상 마을 이미지를 악화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이 지역 한 주민은 “건강 피해를 입은 주민들과 피해가 없는 주민들이 양 갈래로 갈려서 서로 싸우니까 되게 난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오경재 교수는 “국가 전반의 오염에 대한 능동적이고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조사 체계, 명확한 사후관리 체계가 없다보니 결국은 보상 문제로만 국한돼 버리고, 주민들끼리 ‘누군 더 받고, 누군 안 받고’의 문제로 공동체가 분열되는 것이 많이 목격된다”며 “수십 년을 동일한 조건에서 산 사람들에 대해서는 다 같이 집단으로 평가해 피해를 인정해 주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국가가 버린 주민들
<1부>이들이 겪어온 고통
①질병이 덮쳐오다
②배상은 어디에
③이웃도, 생계도 잃다
④화 돋우는 지자체
※매주 월·목요일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