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드라마에 푹 빠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훌륭한 연출에 화려한 배우의 역할도 크지만 무엇보다 드라마에는 물처럼 흘러가는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있다. 물론 이야기라고 해서 다 재미있지는 않다. 인물들 사이에, 아니면 인물과 환경 사이에 내재된 갈등이 적절히 밀고 당기면서 몰입시킨다. 갈등은 이야기가 밋밋해지지 않도록 적당히 긴장하며 집중하게 하는 양념과 같다.
‘갈등’은 소설에서 등장인물 사이에 일어나는 대립과 충돌을 뜻한다. 원래 갈등은 ‘칡과 등나무’를 이르는 말이다. 칡이나 등나무는 바닥을 기다가 나무를 만나면 휘감아 오르는데, 하나는 오른쪽으로 다른 하나는 왼쪽으로 감기는 성향이 있어 서로 엉키면 좀처럼 안 풀리는 지경이 된다. 마치 목표가 다른 사람들 사이, 또는 개인과 집단 사이의 충돌 상태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 같다. 갈등은 번민, 불화, 반목과 다툼, 망설임과 고민 등 많은 어휘와 비슷한 말로 얽혀 있다. 누구에게나 이해관계가 있으며, 심지어 형제자매 사이에서도 그러하니, 갈등이란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다. 드라마의 갈등이 곧 자기 이야기 같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설 속 동물인 ‘낭’과 ‘패’가 있다. ‘낭패’란 다리가 없는 이리 두 마리를 같이 부르는 말인데, 낭은 앞다리로만 살고, 패는 뒷다리로만 살아간다고 한다. 또, 하나는 용맹하고, 다른 하나는 겁쟁이지만 영특한 꾀가 있다는 말도 전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낭과 패는 함께 있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것이 뻔하다. 낭패의 의미에는 이런 문제 상태뿐만 아니라, 서로 반대되는 둘 이상의 요구나 기회 앞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괴로움도 있다. 곧 낭과 패처럼 불완전한 이들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연일 혐오표현과 차별적 말이 신문 기사를 채운다. 흔히 혐오표현은 남녀와 노소, 신분과 이념이 다를 때 나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혐오표현의 실상은 상대방이 두렵지 않은 존재라 여길 때 쉽게 나온다고 한다. 낭과 패처럼 불완전한 사람들 사이에서 누가 누구를 차별하고 혐오할 수 있을까? 돌아보면 갈등이 없었던 시대는 없었다. 외우가 없으면 내환이라도 일으켜 사람들의 흥미를 정치적으로 끄는 일은 언제든 있었다. 칡과 등나무가 얽힌 것을 문제로 본 것도 인간의 관점이 아닐까? 달리 보면 서로 붙들고 의지한 모양새일 칡과 등나무를 보면서, 더불어 살면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적어도 낭패를 당하지 않는 지혜라는 것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