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때 이른바 ‘출판계 블랙리스트’로 정부 지원 사업 배제를 당한 출판사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민사 소송에서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7부(부장 박석근)는 19일 창비와 해냄출판사 등 출판사 10곳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들에게 총 1억1,0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출판사들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4~2015년 출판계를 지원하는 ‘세종도서 선정ㆍ보급 사업’에서 배제된 것은 부당하다며 2017년 소송을 제기했다. 세종도서는 정부가 우수도서를 종당 1,000만원 이내로 사들여 전국의 공공 도서관에 비치하는 출판 지원 사업이다.
당시 청와대의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은 정부의 국정 철학과 배치된다고 여긴 도서 22종을 최종 선정 명단에서 임의로 배제했다. 이같은 사실은 국정농단 수사에서 드러났고,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등은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다.
출판사들은 세종도서에 선정됐다면 납품을 통해 얻었을 이익에 해당하는 손해를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측은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위법 행위는 인정하면서도 "위법행위와 손해 사이의 인과 관계를 출판사들이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또 "출판사의 명예가 어떻게 훼손됐는지 구체적으로 입증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이들 출판사 10곳의 도서 15종이 실제 공무원들의 위법 행위 탓에 지원에서 배제됐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각 출판사가 세종도서에 선정되면 받을 수 있었던 금액인 1,000만원에서 작가에게 지급할 인세와 책 제작 비용을 제외한 비용을 손해액으로 인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당시 청와대와 문체부가 창비와 문학동네의 도서 선정을 최대 5권으로 제한한 부분에 대해선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두 출판사의 세종도서 선정 감소는 공무원들의 제한 외에도 책에 관한 표절과 사재기 논란 등 다른 사유가 중첩해 발생한 결과"라고 지적하며 국가의 위법행위와 재산상 손해의 범위를 정확히 산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세종도서 선정 배제로 사회적 평가가 저하돼 명예를 훼손당했다는 출판사들이 위자료를 청구한 데 대해서도 “사업 수행에 영향을 줄 정도로 출판사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됐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출판사들은 당초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등 블랙리스트 사태 책임자들에도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소송 과정에서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피고에 대한 소송은 취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