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쇳가루, 암 걸려 죽어나가는데... "서울이라면 이렇게 놔둘까"

입력
2021.08.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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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곳 환경오염 지역 현장을 가다]
사월마을 "눈에서 쇳가루, 치료비도 못 받아"
청주 북이면  "암으로 60명 사망" 분노
정부, 심각한 피해에도 질병 인과관계 인정 안 해

[국가가 버린 주민들]<1부>이들이 겪어온 고통 ①질병이 덮쳐오다

편집자주

어느 곳에 사느냐는 권력의 척도가 됐다. 소각로·공장·매립장이 들어서며 병에 걸리고 목숨을 잃었다는 사람들. 암으로 수십 명이 사망한 곳도 있다. 그런데, 목숨에도 등급이 매겨진 걸까. 정부는, 사회는 조용하다. 서울 한복판이라면 어땠을까. 지난 10년 주민들이 '인근 시설로 환경이 오염돼 질병에 걸렸다'며 환경부에 건강영향조사를 청원한 곳은 8곳에 이른다. 대책 없이 방치된 이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눈이 아파서 안과에 갔더니 안구 안쪽에 이물질이 있다고 해요. 빼보니 쇳가루가 나와요. 그냥 뒀으면 실명될 수 있었대요. 지금도 한쪽 눈이 잘 안 보이고 두 달에 한번씩 눈알에 주사 맞아요. 치료비는 개인 부담이에요."

지난 8월 2일 만난 인천 서구 왕길동 사월마을의 50대 주민 서숙진(가명)씨는 끔찍한 고통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날 아침 사월마을을 방문한 기자조차 반나절이 지나자 눈이 따갑고 목이 칼칼했다. 길에 쌓인 흙더미에 자석을 대니 길이 1~5mm 크기의 쇳가루가 딸려 나왔다. 주민은 50여 가구인데 공장이 200개가 들어선 곳이다.


강원 동해시 송정동의 '터줏대감' 박차균(59)씨. 송정동은 집안 대대로 300년 넘게 삶의 터전이다. 그는 폐 기능이 서서히 저하되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을 앓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동풍(東風)이 불면 덧문까지 꼭꼭 걸어 닫는다. 시멘트, 석탄이나 석유, 휘발유 등 유류를 주로 나르는 동해항과 고작 50m 남짓 떨어진 마을이다. 안방까지 들어오는 오염 물질 때문에 자고 나면 방바닥에 새까만 흙먼지가 쌓이고,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의 소음으로 집이 흔들린다.


3개의 소각시설이 몰려 있는 충북 청주 북이면의 이병현(78)씨는 아내 박규희(사망 당시 73세)씨와 말년을 보내기 위해 1998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늘 바지런하던 아내는 급성 혈액암(백혈병)으로 2019년 1월 세상을 떠났다. "내는 원래 건강한 사람이었어요. 서울에 살다가 고향에서 노년을 보내자고 온 건데, 여기서는 자꾸 맥없이 빌빌거리더라고." 이곳에선 지난 10년 사이 60여 명이 암으로 죽어 나갔다.

이들 세 곳은 공통점이 있다. 환경오염으로 암, 폐질환, 피부병, 안과질환, 우울증과 불면증 등 주민들이 심각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지만, 환경부가 주민건강영향조사에서 오염과 질병의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놓은 곳.

지난 10년 동안 주민들이 공장의 유해물질 배출 등 주변 환경오염에 따라 정부에 건강영향조사를 청원했던 지역은 전국 8곳이다. 한국일보는 8곳을 모두 현장 취재했다. 이 중 질병 피해가 인정된 곳은 전북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과 대구 동구의 안심연료단지(연탄공장 일대) 단 두 곳뿐이다. 천안 장산리와 강원 횡성의 한 마을은 평가가 진행 중이고, 부산 생곡매립지 지역은 취하했다.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 왜 이곳 주민들의 고통은 외면받는 걸까. 서울 한복판에서 집단 발병이 발생했어도 이렇게 대책이 없었을까. 질병 피해를 인정받기도 어렵고, 인정받아도 제대로 된 지원 시스템이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 유해시설에 대한 인허가와 감시 체계에도 큰 허점이 있어,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는 문제였다. 한국일보는 소외된 지역적 특성 속에서 생을 위협하는 큰 피해를 입고도 무관심 속에 방치된 오염지역 주민들의 문제를 8회에 걸쳐 짚어본다.



죽고, 또 죽어 나가는 주민들

사월마을 주민 권순복(74)씨는 지난 5월 6촌 동생을 잃었다. 동생은 호흡기 질환으로 투병 생활을 해왔다. 사월마을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환경오염 문제를 제기한 게 5년 전. 권씨는 크게 분노했다. "5년 전만 해도 건강했어요. 5년 전에 그렇게 얘기하고 언론에 보도가 됐을 때 그때만 해결해줬어도 지금 안 죽었어요. 이게 너무 억울한 거야. (6촌 동생에게) 생때같은 애들이 있어요. 내 친동생이나 남편 같았으면 시체 끌고 가서 송장이 썩든지 말든지 시(인천시청) 앞에다 놓고 해결하라고 하지 가만히 안 있어요."

권씨 역시 몇 해 전 갑상선암 수술을 했다. 이곳은 암뿐 아니라 폐, 피부 및 안구 질환도 흔하다. 사월마을 한 주민은 "동네 사람들 눈에 하나씩 데굴데굴 돌멩이가 들어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주민 95명 가운데 40명이 암에 걸리고 이 중 17명이 숨진 익산 장점마을. 마을회관에 걸린 빛바랜 단체 사진에 찍힌 이들의 절반이 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그곳 주민은 말했다. "나한테 닥친 일이 당최 무슨 일인지 엄두도 안 나고 속상헌디 보상은 허구헌날 미뤄져서 답답하지. 주변 가족들 노인네들 다 지쳐서 지긋지긋해하고…."

그나마 환경부는 2019년 장점마을 인근 비료공장에서 나온 1급 발암물질을 원인으로 인정했다. 비특이성 질환(암)에 대해 정부가 역학적 관련성을 인정한 것은 장점마을이 처음이다. 장점마을 주민 등 170여 명은 지난해 7월 전북도와 익산시를 상대로 150억 원대 손해배상 민사조정을 신청했으나 올해 1월 결렬, 소송을 벌이고 있다.


기자들이 찾아간 오염지역 대부분에서 암 등으로 인한 사망 소식을 흔하게 접할 수 있었다. 부산 쓰레기매립지 인근 생곡동의 환경오염 문제를 제기해온 김종원 생곡폐기물처리시설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최근 10년 사이에 돌아가신 분이 11명이었는데 다 암으로 돌아가셨다"며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만 4, 5명이다"라고 말했다. 암 사망자가 20명이 넘는다는 추정도 있다.

2015년부터 생곡에서 살아온 김종원 국장도 원래 시력이 2.0이었는데 지금 휴대폰 글자도 잘 안 보인다. "황화수소에 노출되면 발생하는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시력 감퇴죠."

조사 결과는 분노를 키우고

곳곳마다 정부의 조사 결과에 대한 분노 또한 팽배했다. 유민채 청주 북이면 주민협의체 사무국장은 울분에 차서 말했다. "술은 먹었는데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결론이죠." 환경부는 올해 5월 북이면 소각장 인근 건강영향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소각장 시설과 지역 주민의 높은 암 발생률 간의 역학적 인과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주민들 생체 내 카드뮴 등 유해물질은 우리나라 성인 평균의 3.7~5.7배에 달했으나 정작 소각장 배출구에서는 카드뮴이 검출되지 않아서라고 했다. 유민채 국장은 비장했다. "인권 문제예요. 이거는 인권의 문제예요. 진짜."

2015년 간암 진단을 받은 북이면 주민 오용균(65)씨 역시 분통이 터진다. "새벽에 하늘을 보면 소각장에서 나온 연보라빛 연기가 동네 전체에 깔려 있었어요. 빨래를 널어놓으면 새카매질 정도인데 주민의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니 앞뒤가 안 맞아요."


동해 송정동의 박차균씨도 답답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일하다가 손을 다치면 표가 나지만 공기가 나빠서 폐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압니까. 만약 제가 죽어도 항만 때문에 잘못됐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2016년 2년여의 조사 끝에 동해항 대기 중의 미세먼지, 휘발성 유기화합물, 망간 농도가 10㎞ 떨어진 망상동보다 높고 주민 혈액 중 납과 망간의 농도 역시 국내 평균값을 웃돈다는 결과가 나왔다. 전체 건강검진 인원 약 800명 중 폐 질환자만 120명 이상이 확인됐다. 하지만 환경부는 질환 수준의 특이한 건강 영향은 관찰되지 않았다고 결론냈다.

그는 곳곳이 빈집인 마을을 둘러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내 집에 살면서 창문도 마음대로 못 여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러니 다들 떠나는 거지요." 환경문제가 계속되면서 동해항 개항 당시(1979년) 1만2,700여 명에 달했던 인구수는 4,000여 명으로 줄었다.

아이들까지 덮치는 피해

인구 밀도가 높지 않은 외딴 지역이 상당한 만큼, 피해 주민들은 대체로 노인층이 많았다. 그러나 몇 되지 않은 현지의 아이들도 피해를 빗겨가지 못하고 있다.

사월마을 주민 권순복씨는 "조카들이 피부가 다 뒤집어져서, 병원에 가서 '사월마을에 산다'라고 말하니 이사를 하라고 했다더라"며 "그런데 이사를 하고 싶어도 어디로 가겠나. '쇳가루 마을'로 소문이 나서 집도 절대 안 팔린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부산 생곡동 김종원 사무국장도 "여기 미취학 아동이 8, 9명 정도 있는데 거의 호흡기, 피부질환이 있다"며 "1년 365일 중에 200~300일 정도 병원에 있다고도 한다"고 했다. 부산시에 이야기했더니 '요즘 도시 사는 애들 다 아토피 아이가'라는 말이 돌아왔다.

특히 생곡동 주민들은 건강영향조사를 청원했다가 취하하기도 했다. 정부 조사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어서다. 1994년 시설이 들어선 이후 코를 찌르는 악취와 깔따구 같은 해충으로 고통을 받았다. 자체 조사 결과 주민 대다수가 피부와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고, 암으로 인한 사망자도 20여 명이 나왔다.

2018년 건강영향조사 청원에 나섰으나 고민에 빠졌다. 생곡마을 대책위원회 측은 "환경부로부터 역학조사를 하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권고를 받았다"면서 "당시 해당 내용을 두고 회의를 했는데, 회의에 참석했던 지역 교수도 매립지로 인해 암이 걸렸다고 인과관계를 인정받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라고 청원을 취하한 이유를 밝혔다. 현재 부산시와 이주 등에 대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생명이 지금도 스러진다

'자일렌, 페놀, 프로필렌옥사이드, 포름알데히드….'

배산임수의 한적한 마을, 충남 천안 장산리의 주민 우금제(59)씨가 내민 종이 뭉치에는 낯선 이름의 화학물질과 그 유해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37명 중 암 환자만 무려 12명에 달하는 상황이 인근의 필름·전선 제조공장에서 나오는 유해물질 탓이라고 보고 환경부에 청원을 냈다. 공장 근처에 있는 어떤 집에서는 이전 주인이 폐암으로 사망하고 이사온 주민이 혈액암에 걸렸고, 또 이후 빈집에 살게 된 이는 유방암을 앓게 됐을 정도로 암이 만연했다.

최근 환경부의 1차 조사 결과에서 유해물질 수치가 나왔지만, 평생 땅을 일구며 살아온 주민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들뿐이었다. 2007년에 유방암을 앓았고, 지난해엔 난소암이 생긴 우씨는 난생처음 들어본 화학물질의 이름을 일일이 인터넷에 검색해봐야 했다. 그는 "공장 굴뚝 바로 근처에 사는데, 밤에 창문이라도 열었다 치면 공기청정기에서 경고음을 낸다"라면서 "어떻게 (암이) 공장 탓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산리의 노인회장 이윤수(72)씨는 어느 날 이유도 없이 머리카락이 죄다 빠져버렸다. "병원에서는 혈소판과 백혈구 수치가 낮아져서라는데 (원인을) 모른대. 그러니 답답할 노릇이지."

장산리의 최종 건강영향조사 결과는 올해 10월쯤 나올 예정이다. 아직 최종 결과는 알 수 없지만, 한 집 걸러 한 집에 환자가 있는 장산리 주민들은 "바로 내 몸이, 주민들이 환경오염의 증거"라고 외치고 있다.

장산리를 취재하고 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장산리의 노인회장 이씨가 쓰러져 응급실에 있다는 소식이었다. 마을을 찾았던 7월 말만 해도 정정했던 그였다. 답답한 마음에 소식을 전했다는 우씨는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라는 말만 몇 번이나 했다. "이 마을을,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식들은 하루라도 빨리 동네를 떠나라고 난리인데 그게 말이 쉽죠. 집도, 땅도, 일궈놓은 터전이 다 여기 있는데 앞으로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국가가 버린 주민들

<1부>이들이 겪어온 고통

①질병이 덮쳐오다

②배상은 어디에

③이웃도, 생계도 잃다

④화 돋우는 지자체

※매주 월·목요일 연재합니다.

동해·천안= 전혼잎 기자
인천·익산= 김현종 기자
부산·청주= 박주희 기자
송진호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