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은 한 줄기 희망이다. 코로나 팬데믹의 유일한 탈출구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제품 종류, 효능, 부작용, 공급 상황 등 백신과 관련된 하나하나가 모두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확인되지 않은 정보, 사실이라기보다는 믿음에 가까운 뉴스들도 넘쳐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코로나 예방백신으로 사용 중인 제품은 크게 두 가지 그룹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벡터형 백신으로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이 대표적이고, 러시아 가말레아연구소나 중국산 제품도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는 mRNA 백신으로, 화이자의 지원하에 독일의 바이오엔테크사가 개발한 백신과 미국 모더나사의 백신이 있다.
일반적 선호는 mRNA 쪽이 높은 편이다. 개발 초창기부터 아스트라제네카나 얀센의 벡터 백신보다 방어효능이 높은 것으로 발표된 데다가 아스트라제네카 제품에서 혈전 등 부작용이 보고되면서 지금은 화이자나 모더나 제품을 더 안전한 백신으로 믿는 분위기다.
mRNA란 인체 내에서 기능을 발휘하는 단백질의 물질정보를 내재하고 있는 핵산의 일부다. 이런 mRNA를 백신물질로 몸 안에 주입해 원하는 면역력을 유도하는 항원단백질(antigen)을 생성하게 하는 것이 화이자나 모더나의 백신이다.
mRNA백신기술은 갑자기 나타난 획기적인 신기술은 아니다. 코로나 이전에도 신속한 개발과 생산이 가능한 기술 중 하나로 관심과 연구가 지속되었다. 하지만 핵산 사용이라는 물질 특유의 잠재적 위험성이나 인체 주입 후 쉽게 분해되는 핵산의 안정성 문제 및 기타 기술적 어려움으로 인해, 추가적 연구가 필요한 과제로 여겨졌는데 코로나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면서 mRNA백신은 새삼 주목을 받게 됐다.
mRNA백신의 최대 장점은 백신항원의 개발과 생산이 매우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어느 정도의 인공적 조건을 조성해 원하는 mRNA만을 대량으로 신속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은 기존의 생백신이나 사백신, 또는 재조합단백질백신의 생산보다 훨씬 짧은 기간 내에 원하는 백신후보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게 했고, 이러한 시간의 단축은 그만큼 다양한 물질의 효능과 안전성을 실험해 결국 면역력을 유도할 수 있는 물질도 신속하게 찾아낼 수 있게 했다.
mRNA백신 기술 개발을 주도했던 곳은 독일의 큐어백과 바이오엔테크였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았던 큐어백은 아직도 개발에 성공하지 못한 상태다. 대신 바이오엔테크와 미국 모더나가 성공적인 제품 개발을 먼저 알리고 전 세계의 백신 공급망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상황이 됐다.
그렇다면 mRNA백신은 정말로 가장 우수하고 이상적인 백신인가? 이 점에 관련해서는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
우선 지금의 코로나19나 2009년 신종플루처럼 신속한 백신 개발이 가장 중요한 팬데믹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기술임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장기 보관에 필요한 초저온 또는 저온 냉동조건은 여전히 개선이 시급한 기술상의 난제이다. 또 모더나나 화이자가 사용 중인 전달체(보통 LNP기술로 알려져 있다)를 비롯한 주요 기술의 특허권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이 외에도 핵산물질의 잠재적 위험성에 대한 분석과 이해가 재조합단백질백신을 비롯한 다른 백신제품들에 비해 아직은 많이 부족한 상황이므로 다양한 위험인자들을 면밀하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치료제라면 고통과 생사를 좌우하는 위험한 상황에서 사용되는 물질이니까 어느 정도의 위험인자를 내포한 물질이더라도 효능을 우선시해 환자에게 쓸 수 있겠지만, 감염되지 않은 정상인을 대상으로 주사하는 백신에 핵산을 사용한다면, 안전성에 대한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데이터의 축적이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mRNA백신은 현재 상황에서는 매우 유용한 신속 백신 개발·생산의 원천기술임에 틀림이 없으나, 아직도 안전성이나 보관성 등 범용화나 임상현장의 보편적 신뢰성을 위해서는 개선해야 할 점들이 많은, 조금은 불완전한 초기단계의 기술일 수도 있다.
mRNA 백신회사 중에 가장 주목받는 곳은 모더나다. 우리나라에 약속된 물량을 공급하지 못해 정부대표단이 항의 방문까지 하면서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코로나 이전까지 모더나란 회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원래는 전문적으로 백신을 개발하는 회사도 아니었다. 미국 보스턴에 소재한 이 회사는 하버드대의 mRNA 연구를 바탕으로 신약 및 백신 개발 전문기업으로 출발했는데, 주로 심혈관질환, 신장질환 등 mRNA기술을 이용한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을 수행했다. 그러나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해 어려움을 겪다가 2014년 무렵부터 mRNA 방식의 백신 개발을 시작했는데,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되자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와 공동으로 백신 개발에 성공해 일약 '스타기업'으로 부상했다. 지난해 1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선제적으로 모더나 백신의 긴급사용을 승인하면서 미국 내 사용이 시작되었고, 유럽과 세계보건기구(WHO)의 긴급사용 및 판매 승인이 이어졌다.
모더나사는 자체 생산시설을 갖고 있지 않다. 알려진 바로는 스위스의 론자를 비롯해 유럽의 두 곳에서 제조, 생산을 전담하고 있어 당연히 생산 속도나 규모에 제한이 많다. 그럼에도 아직은 생산망을 획기적으로 늘리려는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생산계약을 진행했지만, 아직은 원료물질을 가져와서 병에 넣는 병입 과정만을 대상으로 계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좀 더 근본적 생산단계인 원액생산 등도 가능해질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기약 없는 이야기이고, 현 단계에선 모더나가 mRNA백신 제조에 관한 근본기술을 우리나라와 협력할지 알려진 바가 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외에도 국내 몇몇 백신생산업체들이 모더나와 여러 가지 형태로 연결되고 있으나 여전히 가시적인 진행상황은 안 보인다.
같은 mRNA백신이지만 모더나는 화이자와 다르다. 화이자는 세계 최대 제약사이자 백신 생산에 관한 한 빅브러더 중 하나다. 개발은 바이오엔테크 몫이지만 생산과 공급을 이 거대한 화이자가 주도하기 때문에, 모더나처럼 공급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생길 여지는 그리 크지 않다.
모더나는 글로벌 제약사들의 생산 능력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는데다 기본적으로 미국 수요 충당이 우선이기 때문에 세계적 수요에 신속한 대응이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모더나가 단기간 내 새로운 공장시설을 구축하기도 어렵고, 코로나 상황이 종료되면 백신시장 상황의 전망이 불확실해질 수 있기 때문에 획기적으로 생산량이 증대되기를 당장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공급 차질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국내 백신 접종을 원활하게 하려면 무엇보다 모더나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등 백신들에 대한 과도한 비교 분석을 자제해야 한다. 현재 가용한 백신을 최대한 동원해, 가능한 한 백신접종률을 지속적으로 상승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들 모더나를 선호하는 분위기이지만 여기에 확실한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러시아나 중국산 백신이 아닌 한, 국내에서 사용 중인 벡터 백신과 mRNA백신 간에 어떤 것이 더 안전하다, 어떤 것이 더 방어효능이 있다, 돌파감염에 대한 저항성이 어느 쪽이 더 뛰어나다는 식에 대한 검증된 결과는 정부 내에도, 과학계 내에도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부작용을 무시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다만 현 상황에선 접종의 편익이 부작용에 대한 불안감보다는 분명 크다. 맛있는 음식 고르듯이 더 좋은 백신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공급이 가능한 백신을 신뢰하고 사용해도 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한 가지 기대되는 것은 노바백스 백신이다. 노바백스의 재조합단백질백신 형태는 사용 경험이 상대적으로 많아 안전성이 우수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내년 초에 사용 승인을 받고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면 현 백신시장에도 상당히 큰 지각변동이 올 수도 있다.
홍기종 건국대 교수·대한백신학회 편집위원장
서울대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미국 텍사스공대에서 분자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 감염병센터에서 신종플루, 탄저균 등 대유행에 대응한 진단기술·백신 연구개발 등의 기획을 담당했고 한국파스퇴르연구소 감염병 연구개발기획 책임자, 국제백신연구소 자문위원에 이어 대한인수공통감염병학회 부회장, 대한백신학회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