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마사지숍에서 아시아 여성 여섯 명이 총격범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코로나 확산으로 아시아인 혐오 현상이 퍼진 데 이어 또 한번 미국 내 인종차별 논의에 불씨를 댕긴 사건이었다.
이 시기 출판계에서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의 책 한 권이 화제에 오른다. 2020년 2월 출간된 캐시 박 홍의 자전적 에세이 ‘마이너 필링스’는 아시아인 혐오 현상에 대한 아시아계 자신의 응답이다. 뉴욕타임스 논픽션 분야 베스트셀러를 비롯해 각종 유력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으며, 퓰리처상 최종후보, 앤드루 카네기상 우수상 후보에 오르고 전미도서비평가협회 자서전부문에서 수상했다.
인종차별 문제를 환기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할 언어로 소환됐지만, 정작 작가는 “인종주의는 전혀 새롭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최근 ‘마이너 필링스’ 국내 번역을 기념해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작가는 “딸아이가 나와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길 바랐다”며 “인종적 정체성 때문에 백인이고 싶어 하거나 자신을 의심하지 않기를 원했고, 그게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라고 설명했다.
캐시 박 홍은 197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이민 2세대로 태어났다. 첫 시집 ‘몸을 번역하기’(2002)로 주목을 받은 뒤 ‘댄스 댄스 레볼루션’(2008), ‘제국의 엔진’(2012) 등을 냈다. 한때 “시에서 자신의 배경, 특히 인종이나 성별을 드러내는 것은 약점의 표시”라고 생각했지만, 시집을 낸 뒤 “무슨 글을 쓰든지 아시아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결코 차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가 파악한 미국 내 아시아인의 위치는 ‘모범 소수자’다. 다른 이민자들에 비해 “근면하고 우등하다”고 평가받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흑인과 비교했을 때 한해서만”이다. 오히려 이 같은 편견은 아시아인이 스스로 ‘무해한 사람’이고자 하는 욕망으로 이어져 인종차별의 현실을 제대로 마주보지 못하게 만든다고 작가는 꼬집었다. 책은 그가 ‘무해한 사람’이고 싶어서 외면해 왔던 내면의 감정을 작심하고 마주본 결과물이다.
작가는 “‘은혜를 입었다’는 생각은 많은 아시아인들이 미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릇된 의식”이라며 “아무리 많은 세대가 살더라도 항상 손님처럼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는 사실은 미국에서 그들의 위치가 조건부라는 것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나는 왜 백인이 아닌가”라는 의심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이는 자연히 이민 1세대인 부모님과 더 앞서 수백 년에 걸친 이민자 차별의 역사 속 사건을 파고드는 작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내가 속한 사회에 나를 설명하기 위해, 나는 왜 이토록 어려운 길을 택해야만 하지?”라고 토로하면서도, “우리가 목청을 높이지 않으면 우리의 수치심은 억압적인 아시아 문화와 우리가 떠나온 나라에 의해 초래된 것이고 미국은 우리에게 오로지 기회를 주었을 뿐이라는 신화를 영구화하게 된다”고 이내 다짐한다. “남들에게 좀 더 이해받고 눈에 덜 안 보이는 존재가 되고자” 책을 썼다는 작가의 말은 이 책이 가진 섬세한 결을 압축하는 문장이다.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 외에도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 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 등 최근 미국 출판계에서 한국계 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미국 출판계의 이 같은 주목에 대해 캐시 박 홍은 “새로운 이야기에 목마른 독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미국 문학계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마이너 필링스’는 “낡은 인종 서사를 갈아치우는” 강렬한 외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