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도둑질을 하다 살인까지 저지른 사람이 있다. 그는 이렇게 항변한다. '내 탓이 아니라 환경 탓이오!' 어렸을 때 의붓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좀 더 사랑을 줬더라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자신이 다른 길을 걸었으리라는 변명이다. 최근 국내에 소개된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죄의 궤적(은행나무 발행)'은 이 항변에 답하는 책이다.
최근에는 다른 논리도 등장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끔찍한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 법정에서 자신의 뇌 사진을 들이미는 범죄자가 있다. 그렇게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나의 '자유 의지' 때문이 아니라 망가진 뇌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 탓이 아니라 뇌 탓이오!' 이런 논리는 종종 받아들여져 살인자는 감옥 대신 병원에 갇힌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익숙한 이런 사례는 '본성이냐, 양육이냐?' 이렇게 묻는 오랜 질문과 겹친다. 수많은 지식인이 논쟁을 벌였던 이 질문은 사실 또렷한 답이 있다.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더퀘스트 발행)'의 저자 리사 펠드먼 배럿도 본성(유전자)이나 양육(환경) 한쪽만 강조하는 일을 우스꽝스러운 "착각"이라고 꼬집는다.
배럿이 보기에, 유전자와 환경은 "격렬하게 탱고를 추는 연인"처럼 "서로 너무 깊게 얽혀 있어서 본성이나 양육 같은 별개의 이름으로 불러 봐야 소용이" 없다. 예를 들어 뇌는 "양육이 필요한 본성"이다. 말장난 같은 이 멋진 말은 그간 뇌과학이 밝혀낸 중요한 과학 연구를 통해 사실이 되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인간의 뇌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변한다. 세간의 상식과는 다르게 10대 성장기가 지나고 나서도 뇌에서 일어나는 이런 변화는 '세부 조정(tunning)'과 '가지치기(pruning)'라는 두 과정의 결과다. 자주 쓰는 신경 세포의 연결을 강화하고(세부 조정), 사용하지 않은 것의 연결은 약해지고 사라진다(가지치기).
내 식으로 예를 들어보면 책 읽기 습관이 그렇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즐겼던 사람이라면 그것과 관계된 신경 세포의 연결은 강화된다. 반면 요즘처럼 어렸을 때부터 유튜브나 게임과 같은 영상 콘텐츠에 익숙한 환경에서는 책 읽기와 관계된 신경 세포의 연결은 약해지거나 사라질 수도 있다.
이제 앞에서 언급한 "양육이 필요한 본성"이라는 표현이 와 닿았을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유전자가 사이좋게 빚어낸 뇌(본성)는 그 자체로는 허점투성이다. 그 뇌는 세상과 만나면서 햇빛과 같은 자연(빛의 자극이 있어야 시력을 담당하는 신경 세포의 연결이 강화된다)부터 양육자(부모)가 주도하는 육아까지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 자신만의 고유한 모습을 찾는다.
10대 이후부터는 사정이 더욱더 복잡해진다. 누구와 어울릴지, 어떤 행동을 선호할지(예를 들어, 담배나 술과 같은 중독으로 이끄는 기호품을 탐닉할지 말지), 직업이나 주거 환경, 심지어 좋아하는 정치인까지 모든 것이 (어느 정도는) 당신의 선택이다. 그런 크고 작은 선택은 뇌의 변화를 이끌고 그런 변화가 쌓인 결과물이 바로 당신의 모습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본성(유전자)이나 양육(환경)이 아니라 '자유'와 '책임'의 문제를 거론한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물려준 뇌도, 어렸을 때 부모의 영향을 크게 받은 뇌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어른이 된 당신의 뇌와는 다르다. 또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당신에게는 새로운 방향으로 예측하는 뇌를 길어낼 자유가 있으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당신이 져야 한다."
덧붙이자면 현대 뇌과학의 주요 성과를 문고판 180쪽 분량으로 정리한 이 놀라운 책의 저자 리사 펠드먼 배럿도 기억하자. 그는 수십 년간 오해와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의 감정 연구의 돌파구를 마련한 과학자다. 그는 논쟁과 탄성을 불러일으킨 수많은 연구 성과를 종합해서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생각연구소 발행)'도 펴냈다.
왜 여행지나 고난 속에서 만난 남녀는 그토록 쉽게 사랑에 빠지고 또 금세 헤어질까? 첫눈에 반해서 자꾸 생각났던 그(녀)를 다시 봤을 때의 감정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다면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에 이어서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도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