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부동산 분야를 총괄했던 김헌동 전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이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에 지원하자 경실련이 난처해하고 있다. 경실련은 그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박원순 전 시장 시절 SH의 경영 방식을 줄기차게 비판해왔는데, 그 핵심 멤버인 김 전 본부장의 처신으로 본의를 의심받는 처지가 된 탓이다. 김 전 본부장의 SH 사장직 지원을 두고 '경실련의 오세훈 서울시장 측면 지원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도는 것도 경실련엔 부담이다.
18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 전 본부장은 13일 SH 사장직에 지원하며 경실련에 사의를 표명했다. 공직에 나설 경우 즉각 사퇴하도록 하는 경실련 내부 방침에 따른 것이다. SH 사장직에는 김 전 본부장을 포함해 최소 5명이 지원한 것으로 파악됐으며, 인선 절차는 빠르면 이달 말 마무리될 것으로 관측된다.
경실련은 재작년 말부터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본격적으로 비판해왔다. 잘못된 정책으로 집값이 폭등했다는 것이 비판의 주종이었다. 비슷한 시점에 SH의 주택 사업도 도마에 올렸다. 지난달만 해도 '보유 자산을 저평가해 바가지 분양의 핑계로 삼았다'(13일), '매입임대 사업을 하면서 비싼 가격에 민간 주택을 사들였다'(26일)는 취지로 SH를 질타하는 기자회견을 두 차례 진행했다.
이런 탓에 김 전 본부장이 SH 사장에 지원한 사실이 알려진 직후부터 '경실련이 4·7 보궐선거에서 오 시장 당선을 측면 지원한 결과'라거나 '김 전 본부장의 후보 지명이 유력하다'는 등의 보도가 나왔다. 경실련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전인 올해 3월 29일과 30일 SH가 공공택지 매각과 공공분양으로 막대한 이익을 냈다는 기자회견을 연달아 진행했고, 지난해 말엔 박 전 시장의 역점사업인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에 반대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런 추측이 돌자 경실련은 전날 입장문을 내고 "역대 시장별 SH의 주택 정책을 비교 분석하며 서울시장의 역할을 요구한 것이지, 특정 후보를 지원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경실련이 앞서 SH 사장으로 내정됐던 김현아 전 의원에 대해 "사장 적임자가 아니다"라며 임명 반대 성명을 낸 점도 구설거리다. 김 전 의원은 시의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다주택 보유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에 휩싸이자 이달 초 자진 사퇴했다.
경실련은 이를 두고 김 전 의원 관련 성명을 낸 곳은 단체 산하 사단법인인 도시개혁센터로, 김 전 본부장이 속한 부동산건설개혁본부와는 별개 조직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김 전 본부장도 "성명 발표에 관여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김현아 사장 임명'에 반대한 곳도, 후임 사장 인선에 뛰어든 곳도 경실련으로 비칠 거라는 지적이 내부에서도 나온다. 경실련 관계자는 "김 전 본부장이 성명을 주도한 것도 아니고 성명을 내는 과정에서 내부 이견도 있었지만, 외부에선 다 같은 경실련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실련은 김 전 본부장이 SH 사장이 되더라도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겠다는 입장이다. 고계현 전 사무총장이 삼성준법감시위원회에 합류했을 때도 준법감시위 해체를 주장했고, 인명진 전 공동대표가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맡았을 때도 새누리당 비판을 이어갔다는 것이 경실련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