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이 왔다!"... 아프간 대사의 '전쟁 같은' 카불 탈출기

입력
2021.08.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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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공항 활주로 아비규환... 총성까지
미군이 아프간인들 밀어내고 이륙
"교민 1명이 탈출 거부하다 마음 돌려"

"전쟁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최태호 주 아프가니스탄 대사는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 카불을 탈출한 과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카불에 남은 마지막 교민 1명과 대사관 직원들을 인솔해 17일 카타르로 간신히 피했다. 19일 외교부 화상 브리핑을 통해 최 대사를 만났다.

"교민 1명이 카불에 남겠다고 해"... '비상'

카불 상황이 급박해진 건 15일 오전(현지시간)이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화상 회의 중이었던 최 대사에게 급전이 도착했다. "대사관에서 차량으로 20분이면 이동할 수 있는 지점까지 탈레반군이 진입했다."

주 아프간 대사관이 예상한 탈레반의 카불 점령 '디데이'는 이슬람 축일인 8월 19일이었는데, 나흘이나 앞당겨진 것이었다. 최 대사는 외교부에 보고하고 곧바로 철수 작업을 시작했다. 직원들은 문서와 보안 자료를 전부 파기했고, 차량으로 우방국 대사관으로 옮겼다(우방국이 어디인지는 기밀이다). 이어 헬기를 타고 군공항으로 이동했다.

마지막 복병이 나타났다. 유일하게 남아 있던 교민 1명이 카불 탈출을 거부한 것. 각국 대사관 직원들이 카타르행 군용기에 속속 탑승하는 상황이라 무작정 기다릴 순 없었다. 그 교민만 남겨 둘 수도 없었다. 이에 최 대사와 대사관 직원 2명이 남기로 했다.

총소리가 뒤덮은 공항..."전쟁 같은 상황이었다"

먼저 철수하기로 한 대사관 직원들이 군용기 탑승을 위해 활주로에 들어선 순간 공습 경보가 울렸다. 공항이 공포로 뒤덮였다. 군용기 이륙이 지연됐다. 교민은 이 과정에서 마음을 돌렸다. 최 대사는 "'미안하다. 철수하겠다'고 하셨다"고 했다.

최 대사 일행은 군공항에 남아 다음 날 비행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또 다른 대혼란이 벌어졌다. 카불을 탈출하려는 아프간 국민들이 군공항에 밀려들기 시작한 것. 이륙하는 항공기에 현지인들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떨어지길 반복했고, 곳곳에서 총성이 들렸다. 최 대사는 "전쟁 같은 상황이었다"고 했다.

결국 16일 군용기 운항이 전면 중단됐다. 17일 새벽 미군이 상황 정리에 나섰다. 활주로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는 아프간인들을 밀어냈다. 최 대사 일행은 이날 새벽 3시 군용기에 오를 수 있었다. "배 선실에 타듯 수송기 바닥에 전부 모여 앉았다. 탑승자 대부분은 미국인이었고, 아프간인도 일부 있었다."

최 대사는 카타르 임시 공관에 머물고 있다. 그는 "너무 바빠서 가족과 통화도 못 했다"고 했다. 그는 당장 귀국하지 못한다. 당분간 카타르에서 주 아프간 대사관 업무를 이어갈 예정이다.

김민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