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부터 경기 과천시 갈현동 재개발 지역에서 주민들과 떠돌이개들을 돌봐온 박모(47)씨는 지난 5월 말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동자연)에 개들의 구조를 다급히 요청했다. 박씨를 포함한 주민들은 2019년 봄 재개발 지역에서 보상금을 받고 문을 닫은 개농장에서 탈출한 일부 개들의 밥을 지금까지 챙겨왔다. 개들은 경계심이 강해 밥만 먹으러 올 뿐 사람 곁에 다가오진 않았다. 그러던 사이 개들끼리 번식을 하며 수가 10여 마리로 늘었고, 올봄 개들이 밭을 해친다는 일부 주민들의 민원이 거세졌다.
박씨는 "민원이 생기자 지방자치단체가 마취총을 동원해 포획을 시도하다 개가 죽는 일까지 벌어졌다"라며 "그사이 개장수들이 잡아가기도 하고 약을 먹고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개 사체도 2마리나 발견되는 등 개들의 안전이 걱정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자체는 마취총 포획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었다"라며 "마취총 포획을 두고 볼 수만은 없어 동자연에 도움을 요청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송지성 동자연 위기동물대응팀 선임활동가는 "개들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남은 개들이라도 살리고 싶다는 주민들의 간절한 요청에 구조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5일 오후 5시, 활동가들은 주민들이 밥을 챙겨주는 한 대형 식당 옆에 포획틀을 설치했다. 밥을 주는 시간에 맞춰 개 너댓 마리가 포획틀 근처까지 왔지만 계속 주변을 맴돌기만 했다. 경계심이 많고 머리가 좋아 지금까지 한 번도 잡히지 않고 살아남은 개들이다. 개들은 포획틀뿐 아니라 주변에 주차한 차량 주변까지 살피며 새로운 환경을 경계했다. 현장에 출동한 활동가 임채헌씨는 "밤 10시가 되도록 개들이 포획틀 주변을 맴돌기만 하고 들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철수하기로 했다"라며 "대신 포획틀을 익숙한 물체로 보이게 하기 위해 포획틀은 그대로 두고 추이를 살피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4일 뒤인 9일 활동가들이 다시 포획틀을 찾았다. 이번에는 아예 포획틀 근처에 개들이 보이지 않아 고민하던 중 오후 8시쯤 주민들로부터 재개발 지역 공사장 안에서 돌아다니는 백구(흰 개)를 목격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활동가들은 300m가량 떨어진 거리에서 망원경으로 개를 관찰한 결과, 배가 나와 있고 젖이 불어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다른 개들과 떨어져 다니는 것까지 감안해 출산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주변에 새끼들이 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활동가들의 예감은 적중했다. 백구의 동선을 따라 주변을 샅샅이 뒤진 결과 무너진 건물 같은 장소에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새끼 다섯 마리가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재래식 화장실로 사용되던 공간이었다. 엄마개는 먹이 활동을 나간 사이였는데 다섯 마리 중 한 마리는 이미 죽은 뒤였다. 활동가들은 포획틀, 관찰카메라 등 장비를 갖추고 다음 날 떠돌이개 가족을 한꺼번에 구조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 10일 오전 10시, 활동가들이 강아지들을 발견한 장소를 확인하니 엄마개와 강아지들이 함께 있었다. 자세히 보니 엄마개는 다른 개들을 뒤로 하고 전날 죽은 것으로 확인됐던 개 사체를 품고 있었다. 활동가들은 포획틀을 설치하는 대신 화장실 입구를 막고 강아지들을 차례로 꺼내기 시작했다. 경계심 때문에 사람에게 가까이 접근한 적이 없는 엄마개는 활동가들이 강아지들을 데려가는 데 저항하지 않았다. 막상 자신을 끌어낼 때 저항하던 엄마개는 구조된 후엔 사람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활동가들은 엄마개의 목을 조여온 낡은 목줄을 풀어주고 떠돌이개 가족을 입양센터인 '온센터'로 옮겼다. 목줄은 엄마개가 한때는 누군가의 반려견이었다는 증거였다. 활동가들은 사람의 시선을 피해 숨어 살며 자신과 새끼를 지킨 엄마개에게 '시선이'라는 이름을, 강아지 네 마리에게는 시작, 시도, 시원이, 시월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시작'과 '시도'는 새 가족을 만났고 시선이와 다른 두 마리는 입양 가족을 찾고 있다.
재개발 지역에서 떠돌이개를 돌보다 '여름이'와 '옹순이'를 입양한 박모씨는 "개들이 잡혀가는 걸 목격한 옹순이는 사람 곁에 가까이 오려고 하진 않지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라며 "떠돌이개들도 구조해 입양하면 충분히 반려견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라고 설명했다.
시선이네 가족은 다행히 구조됐지만 재개발 지역에는 강아지들의 부견과 시선이가 지난해 낳은 개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활동가들은 포획틀 내 음식에 분홍색 약이 섞여있는 것을 발견하고 개들의 안전을 우려해 일단 포획틀을 제거한 상황이다. 활동가들은 이미 개들의 야생화가 진행됐고, 경계심이 심해 포획이 쉽지 않지만 만 앞으로도 구조를 시도할 예정이다.
동자연은 보상금을 타내려고 재개발 공사 예정지에 동물을 데려다 놓고 사육하는 이른바 '동물 알박기' 사례가 많다고 지적한다. 기준 마릿수 이상의 가축을 기르는 경우 축산업 손실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개도 가축으로 취급해 개체 수에 따라 토지주택공사로부터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개들은 어떤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며 보상이 끝나면 도살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송지성 선임 활동가는 "알박기에 이용되는 동물들은 삶을 고통스럽게 이어가고 있다"라며 "알박기를 포함해 재개발로 인해 고통받는 동물의 안전과 복지를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