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16일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국빈 방문한다. 해외 정상을 국빈 초청하는 사례는 상징성과 예산을 감안하면 한 해 2, 3명에 불과하다. 문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에 각별히 공을 들였다는 얘기다.
카자흐스탄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약 1,801억 달러로 세계 53위(한국 12위) 수준이다. GDP 규모만 보면 시급히 관계를 발전시킬 동인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2019년 중앙아시아 순방에서 토카예프 대통령을 만난 이후 카자흐스탄과의 관계 개선에 가속 페달을 밟은 데에는 ①민족영웅 유해 봉환 ②자원 부국에 대한 투자 ③한반도 비핵화에 기여 등의 의미가 담겨 있다.
정부 관계자는 15일 "문 대통령은 카자흐스탄에 묻힌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을 의욕적으로 추진해 왔다"며 "민족 영웅의 귀환에 협조해 준 토카예프 대통령을 예우를 갖춰 맞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 장군의 유해는 이날 밤 9시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을 통해 돌아왔다.
홍 장군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대표적 전과로 꼽히는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를 이끈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이다. 1943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7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뒤 유해가 국내로 돌아오지 못했다.
한국에 홍 장군의 유해를 돌려보내는 일은 토카예프 대통령으로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홍 장군의 유해가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10만 명에 이르는 고려인 사회의 구심점인 탓이다. 더욱이 유해 봉환 협의가 시작된 이후 코로나19 확산 및 장기화로 유해 파묘와 이동이 보다 어려워졌다. 정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유해 봉환 결단을 내려준 토카예프 대통령에 사의를 표할 계획"이라고 했다.
토카예프 대통령 국빈 초청은 자원 부국인 카자흐스탄에 대한 '투자' 의미도 있다. 카자흐스탄은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이 각각 세계 12위와 16위로, 경제 성장 잠재력이 크다. 양국 교역 규모는 문 대통령 취임 첫 해인 2017년 15억 달러에서 지난해 30억 달러로 2배 급증했다. 현대자동차, SK 등도 최근 카자흐스탄에 진출해 활발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오는 17일 토카예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교통·인프라·건설, 정보통신기술(ICT), 보건, 환경 등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 확대를 논의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토카예프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 '독립의 시대'에서 경제 발전 모델로 한국을 언급했다"며 "한·카자흐스탄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간 다수의 양해각서 체결과 기업 협력 강화 등 풍성한 성과가 기대된다"고 했다.
북한에 대한 간접적인 메시지도 있다. 카자흐스탄은 1991년 세계 4위 수준의 핵무기를 자발적으로 포기한 '비핵화 모범국'이다. 여권 관계자는 "카자흐스탄은 자발적 비핵화를 선택한 후 경제적으로 급성장했다"며 "북한도 카자흐스탄을 보며 비핵화 이후의 상황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간 역사적 관계도 재조명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카자흐스탄은 1937년 현지에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에 피난처와 음식을 제공하며 따뜻하게 맞아줬다"며 "고려인들도 카자흐스탄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며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고 했다. 카자흐스탄 포브스(2021년)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부자 상위 50명 중 7명이 고려인이고, 정·관계, 학계에도 다수의 고려인이 진출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