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는 참아달라는데...여야 '노무현 찾기' 경쟁 벌이는 까닭은

입력
2021.08.15 18:00
대선 경선 주요 화두 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與 정통성 경쟁, 野 외연 확장 위해 이미지 활용
공방 소재로도…"명예살인", "고깝냐" 거친 설전
'거꾸로 가는 대선'·'네거티브 가열' 비판도

내년 3월 다음 대통령을 뽑는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에 때 아닌 '노무현 잡기' 경쟁이 치열하다. 양당 주자들 모두 유불리에 따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습관적으로 거론하기 때문이다. 미래보다 과거에 치중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지만 양당 주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특히 최근 국민의힘 주자들이 노 전 대통령을 자주 언급하는 게 눈에 띈다. 대중에게 서민적이고 친근한 대통령이란 이미지를 활용해 지지층의 외연을 넓히려는 행보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의 이미지를 가장 잘 활용하는 야권 주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이다. 윤 전 총장은 몇 달 전만 해도 '노 전 대통령의 친구' 문재인 대통령과 대척점에 있던 인사다.

그런 그와 측근들이 노 전 대통령을 언급하는 건 일종의 보수 색깔 빼기로 풀이된다. 입당 전후로 '강력한 보수 주자'란 점을 강조해 온 터라 중도 표심을 잡으려면 지금과는 다른 이미지를 보여줄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장제원 "라면에 달걀 두 개 말한 윤석열, 노무현 닮아"

심지어 과거 노 전 대통령을 비판했던 야권 정치인들이 노 전 대통령을 치켜세우며 윤 전 총장과 닮았다고 강조한다. 윤석열 캠프의 총괄실장인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적이다.

장 의원은 2017년 9월 '노 전 대통령이 부부싸움 끝에 자살했다'고 한 정진석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뭇매를 맞자 "노무현 대통령의 '노'자만 꺼내면 용서할 수 없는 역사의 죄를 지은 양 발끈하고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난리를 친다"고 반발했다.

이랬던 장 의원은 12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스케줄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해 (윤 전 총장) 댁에 갔는데 라면도 끓여주셨다. 라면을 끓이면서 '계란 두 개?' 이렇게 말씀하신다"며 "굉장히 투박하고 직설적이고 서민적이다. 윤 전 총장을 보면 노 전 대통령과 닮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야권 주자 중 김태호 국민의힘 의원도 노 전 대통령을 꺼냈다. 김 의원은 대선 출마 선언 이후 지난달 28일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방명록에는 '공존의 씨앗 꼭 심겠습니다'라고 적었다.


盧사위, 민주당 탄핵 공방에 "노무현을 선거에서 놓아달라"

사실 노 전 대통령을 대선 경선 무대로 끌어들인 건 민주당이 먼저다. 민주당 주자들은 대선 후보 경선 초기에 '민주당 정통성'을 두고 경쟁했다. 자신이 '노무현 정신'을 이을 적임자라는 걸 강조해 당내 최대 세력인 친노·친문계 표심을 선점하려는 생각에서다.

이재명 경기지사 측은 이낙연 전 대표에게 노 전 대통령 탄핵 가담 의혹을 제기했다. 탄핵을 막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건 물론, 탄핵을 위해 한나라당(현 국민의힘)과 손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정세균·김두관·추미애 예비후보도 공방전에 가세해 민주당 경선을 노 전 대통령으로 가득 채웠다. 민주당 주자들은 네거티브 공방이 가열돼 휴전 선언을 했지만, 이미 노 전 대통령은 네거티브의 소재가 된 뒤였다.

노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는 "노무현을 선거에서 놓아 달라"고 호소했다. 곽 변호사는 지난달 2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을 통해 "또 노무현 소환, 노무현을 기준으로 편 가르지 말고, 적대적으로 소비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정세균 "野, 입에 노무현 올리나"…이준석 "노무현 정신에 어긋"

양당은 또 상대당을 공격하는데 노 전 대통령 카드를 꺼냈다. 국민의힘은 '노 전 대통령이었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란 반문 화법으로 민주당이 내로남불 정당이란 점을 부각했다. 반면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을 조롱하고 폄하했던 국민의힘이 노 전 대통령을 거론하는 건 '모독'이라고 반발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처리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을 거론했다. 싸움의 발단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발언이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과거 노 전 대통령은 언론 다양성을 추구하는 정책을 폈다"며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노무현 정신과 어긋난다"고 말했다.

그러자 민주당에선 오히려 노 전 대통령 서거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필요한 이유라고 맞받았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노 전 대통령 서거에도 가짜뉴스 영향이 있다"고 했고,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논두렁 시계 같은 가짜뉴스 수사정보를 흘리는 검찰의 인권침해나 그걸 받아쓴 언론의 횡포에 속절없이 당하신 게 노 전 대통령"이라며 이 대표를 성토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이 대표는 이 과정에서 격한 설전을 주고받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정 전 총리는 1일 페이스북에 "당신들의 입길에 더는 노무현 대통령을 올리지 말라. 고인에 대한 명예살인이니 당장 멈추라"며 "노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고,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막말로 조롱했던 당신들의 과거를 또렷이 기억한다"고 일갈했다.

이 대표는 이에 "정 전 총리께서 뭔가 착각한 것 같은데, 노무현 대통령님은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언론의 자체적 필터링을 추진하신 자유주의자"라며 "지금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는 언론에 재갈을 물린다는 지적"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친노라면 노 전 대통령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라는 말이 그리도 고깝나"라고 비꼬았다.


친노·중도 표심에…여야, 모두 놓지 못하는 '노무현'

네거티브 공세가 격화하며 퇴행적 대선이란 말까지 나오지만, 당분간 양당 주자들의 '노무현 전략'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주자들은 지지자들에게 '고 김대중 전 대통령(DJ)-노 전 대통령-문 대통령'을 이을 계승자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여전히 40%를 웃돌며 역대 대통령 중 임기 마지막 해 지지율 중 가장 높은 상황에서 친노·친문 표심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지사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이자 영남권 친노의 좌장으로 불리는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영입하며 '노무현 정신'을 강조한 게 이를 뒷받침한다.

이준석 대표가 취임하면서 외연 확장을 자신의 과제로 꼽았던 만큼, 국민의힘도 노 전 대통령 이미지를 놓칠 수 없다. 이 대표는 취임 초기 경남 김해의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며 중도층 흡수에 공을 들였다. 그는 6월 25일 취임 이후 영남권을 처음 방문하면서 봉하마을을 찾았는데, 이때 "노 전 대통령의 가치를 우리 당의 가치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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