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게임업체 록스타게임즈가 2013년 내놓은 '그랜드 시프트 오토(Grand Theft Auto, GTA)5'는 문제적 게임이었다. 자동차 도둑이라는 제목이 말하듯 이용자는 게임 속 범죄자가 돼서 자동차를 훔치고 돈을 빼앗는 강도짓을 서슴지 않는다. 지금은 이런 게임들이 너무 많지만 당시에는 논란 끝에 국내에서 청소년 불가 게임으로 출시됐다.
이 게임이 이달 초 전 세계에서 출시 8년 만에 1억 개 이상 팔리며 단일 콘솔 게임 중 처음으로 매출 1조 원을 넘어서는 기록을 썼다. 제작사 발표에 따르면 GTA5의 누적 판매량은 1억5,000만 개, 판매액은 10억 달러(약 1조1,500억 원)다.
1억 개 이상 팔리고 1조 원 이상 매출을 올린 게임은 많다. 컴퓨터(PC)용 온라인 게임 중에 라이엇 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LOL)는 2016년 월 이용자가 1억 명을 넘어섰고, 엔씨소프트의 모바일 게임 '리니지M'은 누적 매출이 3조 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스웨덴 업체 모장이 PC, 콘솔, 모바일용으로 만든 게임 '마인크래프트'도 1억 개 이상 팔렸다.
GTA5는 이런 게임들과 달리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논란이 된 내용 때문에 성인 게임으로 분류돼 많이 팔리지 않을 것이고 비슷한 임무가 되풀이되는 이야기 또한 쉽게 질릴 수 있다는 예측이었다. 제작사는 이 같은 한계를 다양한 ‘변주’로 뚫었다. 부정적 평가를 오히려 호기심을 끄는 마케팅의 원동력으로 이용했고 콘솔뿐 아니라 PC와 온라인 게임까지 출시했다. 이를 위해 제작사는 게임 하나에 무려 2억6,500만 달러(약 3,000억 원)의 제작비를 쏟아 부었다.
그런 점에서 GTA5의 놀랍고 당혹스러운 성공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무엇보다 콘솔과 PC를 넘나드는 멀티 플랫폼의 확장이다.
우리는 과거 일본이 개발한 오락기라는 부정적 인식 때문에 오랜 세월 정부에서 콘솔을 수입 금지했다. 그 바람에 콘솔이 주도한 해외 게임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놓쳤다. 거꾸로 PC용 온라인 게임이 발전하는 효과도 있지만, 여전히 세계 시장에서 'K게임' 바람을 일으키지 못하는 한계도 분명 안고 있다. 얼마 전 영상 인터뷰로 만난 넥슨의 닉 반 다이크 수석부사장도 이 점을 지적하며 멀티 플랫폼 게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근 영업이익이 줄어 고심하는 국내 게임업체들도 멀티 플랫폼 게임 개발에 적극 나서는 만큼 정부도 정책적 지원을 위해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더불어 GTA5는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는 '환부작신'(換腐作新)의 사례가 됐다. 독일에서는 GTA5를 무인 자동차 개발에 활용한다. 다름슈타트 공대는 수많은 사람과 자동차가 오가는 도로 대신 가상 세계인 GTA5에서 무인 자동차 시험을 한다.
제작사는 오랜 시간 GTA5를 업데이트하며 실제 공간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었다. 실제 도로처럼 많은 사람과 자동차들이 오가며 갑자기 돌발 상황을 만들어 낸다. 다름슈타트 공대는 GTA5 속 특정 상황에 반응하는 차량과 사람들의 움직임을 무인 자동차용 인공지능(AI)의 학습을 위한 재료, 즉 빅 데이터로 사용한다. 독일의 GTA5를 이용한 무인 자동차 개발 사례는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게임을 중독성 사회악으로만 치부한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발상이다.
록스타게임즈는 11월 GTA5의 차기작을 내놓는다. 과연 어떤 모습의 게임일지,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얼마나 달라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