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제2, 3의 도시도 장악하고 카불 향하는 탈레반… 공허한 '휴전 촉구' 외침

입력
2021.08.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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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사이 34개 주 중 17개 주도 장악
미영 이어 캐나다 대사관도 철수 시작
국제사회, 탈레반에 "자제하라" 경고뿐
궁지 몰린 아프간 정부 '권력분담' 제안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맹렬한 기세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아프간 제 2, 3의 도시를 동시 점령하는 등 일주일 사이 34개 주도(州都) 가운데 17곳을 장악한 것이다. 민간인 피해 급증에 국제사회도 탈레반에 ‘무력행위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으나, 이를 저지할 뾰족한 수가 없다. 이미 철군을 상당 부분 마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현지 주둔군의 ‘유턴’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서방국은 카불에 있는 자국민 안전 귀국을 위한 제한적 파병만 결정하는 등 ‘엑소더스’에 급급한 모습이다.

12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탈레반은 이날 아프간에서 수도 카불 다음으로 큰 도시인 칸다하르주(州)의 주도인 칸다하르, 헤라트주 주도인 헤라트를 잇따라 점령했다. 탈레반은 성명에서 “칸다하르 주지사 사무실과 경찰 본부 등이 모두 우리의 통제하에 있다”고 밝혔다. 탈레반에 있어 칸다하르 장악은 상징성이 매우 크다. 아프간 남부의 경제 중심지인 이곳은 1990년대 탈레반이 조직화를 시작한, 일종의 정신적 고향이다.

같은 날 탈레반은 카불에서 150㎞ 이내에 있는 가즈니주의 주도 가즈니, 북서부 바드기스주의 주도 칼라아이나도 점거했다. 카불을 향해 점점 포위망을 좁히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다 남부 헬만드주의 주도 라슈카르가, 자불주 주도 카라트 등도 13일 추가 점령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탈레반은 이날 또 카불에서 남쪽으로 50㎞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로가르주 주도 풀리알람을 장악했다. 이로써 아프간 남부 상당수 지역 및 이란과의 국경 지역 대부분이 탈레반의 손에 들어갔다. 북부는 거의 모든 지역이 탈레반 수중에 있다. 미국 관리들 사이에선 “아프간 정부가 30일 안에 붕괴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탈레반의 파죽지세 공격 속에 민간인 피해는 심각하다. 아직은 정부군이 사수 중인 카불로 피란민 수천 명이 모여들고 있는데, 7만2,000명 이상의 아동이 카불 거리에서 지낸다고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전했다. 유엔 집계 결과, 최근 한 달간 숨진 민간인은 1,000명을 웃돈다.

궁지에 몰린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에 권력분담 제안을 하는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 소집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사태 해결의 기미는 전혀 없다. 국제사회가 탈레반에 자제를 요청하며 외교적 해법을 촉구하고 있지만, 공허한 외침이다.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파키스탄 등의 외교관들은 12일 카타르 도하에서 아프간 정부, 탈레반 대표와의 회담 후 성명을 통해 “군사력을 써서 수립하는 정부는 인정하지 않겠다”며 양측의 신속한 포괄적 휴전 조치를 요구했다. EU도 별도 성명에서 “무력으로 권력을 잡으면 국제지원을 받지 못하고 고립될 것”이라고 탈레반에 거듭 경고를 보냈다. 그럼에도 탈레반의 공세는 현재진행형이다.

서방 사회는 이런 상황에서 자국민 대피가 최우선이다. 미국은 수주 내에 아프간 주재 대사관 핵심 인력 외 직원들의 안전 철수를 위해 병력 3,000명을 일시 파병한다고 밝혔다. 이어 나토군 일원으로 활동했던 영국과 캐나다도 대사관 직원 등의 귀국을 위한 파병 계획을 발표했다. 모두 ‘일시적 조치’이며, 기존 철군 계획엔 변함이 없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번 임무는 민간인 이동을 보호하기 위한 임시적인 것”이라며 당초 목표한 철군 완료 시점은 바뀌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진달래 기자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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