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을 비롯한 미국 거대 기술기업들이 재택근무 중인 직원들의 임금을 삭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는 추세에 맞춰 근무 지역별로 차등을 둔 임금 체계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교외 지역에서 거주하면 생활비가 덜 드는 만큼 임금을 덜 줘도 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형평성 문제와 성별 임금 격차 확대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아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12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은 “구글이 완전 재택근무를 원하는 직원들에게 적용할 새로운 임금 계산법을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앞으로는 사무실 출근 대신 재택으로 원격 근무를 하면 기존 출퇴근 시간을 고려해 평소보다 적은 임금을 받게 된다. 새 임금 체계는 미국 내 직원들을 대상으로 우선 시행할 예정이다.
일례로 미국 워싱턴주(州) 시애틀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2시간에 달하는 통근 시간을 아끼려고 재택근무를 택했다가 임금 10%를 깎이게 됐다. 이 직원은 “승진으로 올라간 임금을 고스란히 토해내야 했다”며 “이러려고 열심히 일한 게 아니다”라고 로이터통신에 불만을 토로했다.
출퇴근 거리에 따른 삭감 기준이 공정한지를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뉴욕에서 기차로 1시간 떨어진 코네티컷주 스탬포드에 사는 직원은 원격 근무를 하면 월급 15%가 삭감된다. 하지만 시애틀과 보스턴, 샌프란시스코에서 1시간 거리에 사는 직원은 5~10%만 깎인다. 비슷한 조건임에도 삭감률은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다.
구글 대변인은 “새 임금 계산법은 직원들이 일하는 장소 및 재택근무 장소에 따른 급여 변화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발됐다”며 “구글은 언제나 현지 기준 최고 수준의 급여를 지급한다”고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기업들은 이미 물가가 저렴한 교외 지역에 사는 직원들에게 더 적은 월급을 지급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일부 기업들도 새로운 임금 구조를 실험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임금 체계는 고용법상 문제 소지가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영국 공인인력개발연구소 관계자는 “근로자들이 계약 위반 등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에 임금 삭감은 매우 위험한 접근 방식”이라며 “임금 체계를 바꾸려면 미리 직원들에게 명시적인 서면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짚었다.
변호사 엠마 버틀렛도 “직원 입장에선 같은 일을 하고도 임금을 적게 받는다면 사기가 꺾일 것”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도 사무실 출근 직원과 재택근무 직원을 구분해 고용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여성 직원의 경우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재택근무를 택할 가능성이 큰 만큼, 이번 조치가 성별 임금 격차 확대로 이어질 거란 우려도 크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 제이크 로젠펠드 사회학과 교수는 “구글은 그동안 재택근무자들에게도 급여를 100% 지급해 왔다”며 “재택근무자의 급여를 삭감해야 할 정도로 여유가 없어진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