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불가피하게 채무 연체를 하는 사람이 신용도 하락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는 이른바 '신용 사면' 조치가 시행된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8월 사이 발생한 2,000만 원 이하 연체금을 올해 말까지 갚으면 신용등급에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게 골자다. 금융권은 약 230만 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코로나 확산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너무 성급하게 기준을 설정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12일 금융권은 전날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언급한 '코로나19 관련 신용회복지원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참여한 기관은 한국은행연합회를 비롯한 7개 금융업 협회와 6개 중앙회, 한국신용정보원, 6개 신용정보회사 등 총 20곳이다. 외형은 자율 협약이지만, 실상은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로 인한 채무 연체자의 신용회복 지원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금융권이 고안한 방식은 '연체이력 정보 공유 중단'이다. 통상 3개월 이상 연체가 발생하면 기록이 남는데, 이 기록은 변제 후에도 최대 5년까지 신용평가사(CB)에서 활용된다. 채무자 입장에선, 연체 정보 등록 시 신용 점수가 낮아져 카드 발급이나 대출 등 제약이 생길 수 있다. 금융권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피해가 자영업자 등에 차별적으로 집중된 만큼, 소액 연체에 한해서는 신용 점수 산정에 반영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신용 사면 대상이 되려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8월 사이에 발생한 2,000만 원 이하의 소액연체를 올해 연말(12월 31일)까지 모두 갚아야 한다. 이는 외환위기 직후 진행됐던 신용회복 지원 조치를 감안한 것이다.
당시엔 연체 금액 1,000만 원 이하 채무자가 대상이었지만 그간 경제성장을 감안해 2,000만 원으로 높여 잡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10월 이후 나이스크레딧 등 CB사를 통해 자신이 대상자인지 확인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권은 이번 조치로 약 230만 명의 개인 대출자가 신용 사면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0만 명의 신용점수가 평균 34점 올라 대출 금리를 낮출 수 있고, 12만명이 카드 발급 기준 최저 신용점수(나이스 기준 680점)를 넘길 수 있으며, 13만 명은 대출 접근성이 향상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편에선 여전히 확산세에 있는 코로나 상황을 간과한, 성급한 판단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연체금을 올 연말까지 갚으면' 신용 사면을 받을 수 있지만, 지금 같은 코로나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태에서 연체금을 갚을 수입을 연말까지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어서다. 실제 여름 휴가철 대목을 기대하던 소상공인들은 잇단 '셧다운'에 남은 3개월 안에 연체금을 갚을 길이 막막한 상황이다.
이 같은 지적에 금융권은 현실적인 이유를 들고 있다. 내년 초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신용 사면 적용기간을 과도하게 늘릴 경우 정치적 입김에 휘둘려 자칫 금융사가 지나친 리스크를 짊어져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주도 조치인 만큼 당국과 금융권이 상호 만족하는 수준에서 기준이 협의됐을 것"이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