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서명문 태극기 등 독립 열망 담은 태극기 3건 보물로

입력
2021.08.1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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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국(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 인력 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힘을 가진 세상의 나쁜 무리)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

1941년 3월 16일 김구는 중국 충칭에서 태극기에 친필로 이렇게 썼다. 이 태극기는 선교를 위해 미국으로 가려던 벨기에 신부 매우사(梅雨絲·본명 샤를 미우스)에게 쥐여졌다. 김구는 미국에서 우리 동포를 만나면 이 글을 보여주라고 당부했다. 이후 태극기는 안창호의 부인 이혜련에게 전해졌고, 후손들이 보관하다 1985년 독립기념관에 기증됐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 등 독립의 열망을 담은 태극기 3건이 보물로 지정된다. 12일 문화재청은 광복절을 앞두고 김구 서명문 태극기를 비롯해 데니 태극기, 서울 진관사 태극기 등 3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태극기가 보물로 지정 예고되기는 처음이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김구와 안창호로 대표되는 일제강점기 해외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한국인의 광복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완식 독립기념관 자료부 학예관은 “상징적 인물이 직접 독립 의지를 표현한 태극기로 그 의의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19~20세기 초 제작된 태극기 가운데 명확한 제작시기가 알려진 태극기라는 점, 매우사 신부로부터 안창호 선생이 태극기를 전달받기까지 상황이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어 전래 경위가 분명하다는 점, 1942년 6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태극기 제작규정을 통일하기 직전에 제작돼 태극기 변천 과정을 살펴보는데 귀중한 자료라는 점도 반영됐다.


데니 태극기는 고종의 외교 고문으로 활동한 미국인 오웬 니커슨 데니(1838~1900)가 소장했던 태극기다. 1891년 1월 그가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가지고 간 것을 1981년 그 후손이 우리나라에 기증했다. 1890년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데니 태극기는 현존 태극기 중에 가장 오래됐다. 1886년 조선 정부의 외교 및 내무 담당 고문으로 부임한 오웬 니커슨 데니는 당시 조선과 프랑스 간의 통상조약 체결 시 국제관례에 익숙지 않던 조선이 불리한 조약을 맺지 않도록 노력했고, 조선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으로서 조약을 맺을 수 있도록 조력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태극기는 세로 182.5㎝, 가로 262㎝로 국내에 있는 옛 태극기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국기를 제정해 독립국임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대한제국의 외교적 노력을 증명하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뜻 깊은 사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 진관사 태극기는 우리나라 사찰에서 최초로 발견된 일제강점기의 태극기다. 이를 통해 불교 사찰이 독립운동 배후 근거지 또는 거점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3·1운동이 벌어진 1919년 전후에 만들어진 희귀한 실물 태극기이며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가장 오래된 사례라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진관사 관계자는 “흰색 바탕 천에 일장기의 빨간 부분을 오려 붙이고, 그 위에 먹을 칠해 태극 문양을 표현한 것”이라며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려 독립 의지를 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특별하다”고 설명했다.

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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