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전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왕징. 아파트 주민 대화방이 술렁였다. 길 건너 아파트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 봉쇄됐다는 말이 돌았다. 1,000여 가구가 입주한 적잖은 규모의 단지다.
“맙소사, 맞네.”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되면서 탄식이 쏟아졌다. 방역요원과 경찰이 아파트 정문 앞에서 주민들의 단지 밖 이동을 막고 있었다. 확진자는 1명에 불과했지만 당국은 격리가 21일간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확진자가 다녀간 상가 건물도 즉시 폐쇄됐다.
날벼락이었다. 이웃을 지켜보던 안타까움도 잠시, 주민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검사소 천막 앞에 줄을 서야 한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 다만 오늘 당장인지가 궁금한 눈치였다. 지난해 12월 확진자가 발생하자 중국 특유의 속도전으로 이틀 만에 주민 30만 명을 전수 검사한 전례 때문이다.
“왕징 주민은 원칙상 베이징을 떠날 수 없다”는 시 당국의 지침이 내려왔다. 앞서 확진자가 나온 베이징의 다른 곳처럼 방역단계가 ‘중위험’ 지역으로 격상되진 않았다. 하지만 이미 심리적으로는 집과 동네 안에 발이 묶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정 무렵 주민 대표가 공지를 띄웠다. “5일 아침 6시 반에 검사를 시작합니다.”
주변 아파트 주민 5,600여 명이 검사에 응해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전체 대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규모였다. 주민들은 서둘러 검사를 받자고 서로 독려하긴 했지만 꼼꼼하게 인원을 체크하던 지난해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그렇다고 경각심이 누그러진 건 아니었다. 두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방학기간 베이징을 떠난 적은 없는지, 이동경로가 어떤지 묻는 긴급문자를 보내왔다. 당국은 “현재 베이징 밖에 있는 주민은 속히 돌아오라”며 수시로 경보음을 울렸다. “초ㆍ중학교 개학을 9월 1일로 연기합니다.” 부모들이 우려하던 통지문이 6일 날아들었다.
7일 대화방에 살벌한 서약서가 올라왔다. 앞서 확진자의 동선과 겹치는 장소에 간 적이 없다고 각자 확인하는 내용인데, 핵산 검사 음성증명서와 함께 제출하라고 적혀 있었다. “거짓일 경우 모든 법적 책임을 진다”는 경고 문구도 빼놓지 않았다. 지난해 코로나 위기가 한창일 때처럼 빨간 완장을 두르고 단지를 오가는 주민위원회 관계자들이 눈에 띄었다.
8일 일부 도시와 베이징을 잇는 항공과 기차편이 끊겼다. 당국은 코로나 상황이 진정되지 않은 곳에 머문 경우 베이징에 오지 말고 현지에서 방역에 철저를 기하라고 말을 바꿨다. 지난 1월 28일 이후 6개월여 만에 코로나에 뚫린 수도 베이징을 보위하기 위한 극약처방이다.
바이러스는 중국 전역으로 번졌다. 중위험 이상 지역은 200곳을 훌쩍 웃돌았다. 지난달 20일 난징 공항에서 촉발된 코로나 감염자는 1,500명을 넘어섰다. 벌써 40여명의 관료가 방역 실패로 문책을 당했다. 상호 감시를 부추기는 ‘신고 포상제’도 등장했다. 동선을 숨긴 확진자를 신고하면 5,000위안(약 88만7,000원), 군중 모임을 신고하면 10만 위안(약 1,775만 원)을 준다고 한다.
이날 도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바통을 이어받은 중국으로서는 내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을 향한 출정식과도 같은 날이다. 하지만 벅찬 기대보다는 당장의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절박함에 축제 분위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9일 주민들이 다시 한번 아파트 임시 검사소 앞에 줄지어 늘어섰다. 이번에도 대기 행렬에 비해 시간이 짧았다. 혹시나 하는 감염 걱정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려는 주민들은 유료 핵산 검사소로 발길을 돌렸다.
10일 해외 유입을 제외한 중국 본토 확진자가 100명을 넘어섰다. 이번 델타 변이 사태 이후 세 자릿수를 기록한 건 처음이다. 반면 보건당국은 “잠복기를 고려하면 앞으로 한두 달 안에 상황이 정리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물론 누구도 정색하고 반박하진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겹겹이 틀어막으며 확진자 ‘0’을 고집해온 중국의 집요한 방역체계도 언제든 변이 바이러스에 속절없이 뚫릴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