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한미훈련·코로나… 사사건건 ‘말의 전쟁’ 벌이는 미중

입력
2021.08.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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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고위 관리·기관, 전방위로 상대방 공격
한날 동시다발적으로 견제·저격 발언 쏟아내
트럼프 정부 때보다 바이든 취임 후 더 뚜렷

미국과 중국 간 ‘말의 전쟁’이 한날 전방위로 벌어졌다. 남중국해 문제부터 한미연합군사훈련 실시 여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책임론까지, 그야말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양국 고위 관리나 정부 기관이 서로를 향해 견제구 및 저격성 발언을 동시다발적으로 쏟아낸 것이다. 특히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는 글로벌 양강의 이 같은 대립 구도는 3년 전 미중 무역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시절보다 오히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 이후 더 뚜렷해지는 분위기다. 미국 내에서조차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외교 노선을 우려하는 시선이 나온다.

유엔 안보리서 '남중국해' 두고 정면 충돌

9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고위급 원격회의에선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해 미중 간 격한 공방이 벌어졌다. 남중국해는 중국과 대만, 베트남 등 6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곳으로, 미국의 인도ㆍ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ㆍ해상 실크로드) 전략이 맞부딪치는 핵심 전장(戰場)이다.

포문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열었다. 블링컨 장관은 “우리는 그동안 남중국해에서 선박 간 위험한 조우는 물론, 불법적 (영유권) 주장을 밀어붙이려는 (중국의) 도발적 행동을 봐 왔다”며 “타국을 위협하고 괴롭히는 (중국의) 행동에 분명한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의 불법 해상 활동이 처벌을 받지 않을 경우엔 “모든 곳에서 불안정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다이빙 주유엔 중국 차석대사는 “남중국해 평화에 대한 최대 위협은 다름 아닌 미국”이라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미국의 주장은) 정치적 동기를 지닌 선전전”이라며 “미국은 해양 문제를 다룰 자격이 없다”고 쏘아붙였다. 유엔 해양법조약을 아직 비준도 않은 미국은 남중국해 문제에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美 "한미연합훈련? 한미가 결정" vs 中 "건설성 없다"

블링컨 장관의 ‘중국 견제’는 다른 자리에서도 이어졌다. 이날 메릴랜드대 공학연구소를 찾은 그는 연설에서 “중국과 러시아 정부가 ‘미국의 전성기는 지났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이 지금 당장 국내 부흥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면 그런 그들 주장을 훨씬 빨리 잠재울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1조2,000억 달러 규모 초대형 인프라 예산 법안의 상원 통과 필요성을 강조하는 차원의 언급이었으나,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게 해당 법안의 진짜 목적임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한미연합훈련도 도마에 올랐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전에도 말했듯, 우리는 이런 결정을 동맹 한국과 발 맞춰 내린다”고 재차 강조했다. 앞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6일 “한미 합동군사훈련은 현재 형세하에서 건설성을 결여한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데 대해, 다시 한번 ‘한미가 결정할 일’이라고 쐐기를 박은 것이다. 사실상 ‘중국은 간섭 말라’고 에둘러 불편함을 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자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같은 시간대인 10일(한국시간) 1면에 ‘위대한 항미원조(抗米援朝) 정신이 시공간을 초월해 더욱 새로워지다’라는 기사를 내고 미국을 겨냥했다.

"美, 코로나 최대 실패국" vs "中 우한이 기원"

미중 간 ‘코로나19 책임론’도 가열되고 있다. 이날 중국 환구망 보도를 통해 공개된 ‘미국 1위? 미국 방역의 진상’이라는 보고서에서 중국 인민대 금융연구원은 “미국이 세계 1위의 방역 실패국”이라고 맹폭을 가했다. 미국의 참모습은 △코로나 대유행 대응 실패로 확진자 급증 △정치적 떠넘기기 행태 △거짓 뉴스 확산 △코로나19 기원 조작 등에 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미국 역시 코로나19와 관련해 ‘중국 우한 기원설’을 연일 밀어붙이면서 대중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사실상 동일 시간대에 미국이 중국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상대국 때리기’에 열을 올리는 현 상황에 비춰, 미중 갈등 국면은 장기간 지속될 공산이 크다. 지난달 말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의 중국 방문 때에도 별다른 성과 없이 회담이 종료되자 뉴욕타임스는 “중국 외교부의 호전적 논평을 볼 때, 미중 사이의 곪아 있는 분쟁이 완화할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한 바 있다. 미국 내 일각에선 “미국의 중국위협론이 과장돼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브루스 젠틀슨 듀크대 정치학 교수는 지난달 말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바이든이 트럼프보다도 중국위협론에 집착한다”며 “중국이 최근 더욱 공세적 태도를 취하긴 하지만, 중국 견제를 미국 외교전략의 핵심으로 삼으면 냉전 시기의 오류를 반복하는 또 다른 덫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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