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서 모셔온 아버지 몸에 상처와 멍이...” 코로나에 가려진 노인학대

입력
2021.08.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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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시설 학대 피해 호소 잇달아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노인들이 요양시설에서 학대 피해를 당했다는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가족과의 면회 단절과 거리두기 강화로 고립감이 심화된 노인들이 막다른 길에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에 사는 김모(37)씨는 9일 경기 광주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45일 만에 집으로 모셔온 아버지(72)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가슴을 쳤다. 몸 곳곳에서 상처와 멍 자국이 다수 발견된 것이다. 무언가에 묶인 자국이 선명한 생식기는 비정상적으로 부어 있었고, 항문 상태도 입원 전과 비교하면 엉망이었다.

아버지는 자초지종을 묻는 딸에게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 간병인이 자신을 휠체어 등으로 옮길 때 거칠게 다뤄 날카로운 테이블 모서리 등에 찍혀 난 상처”라며 울먹였다. 17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는 오른쪽 편마비로 거동이 불편하지만 정신은 온전했다.

김씨는 병원 측의 방임 의혹도 제기했다. 입원 당시 주 1회 이상 목욕을 시켜준다고 했으나, 입원 한 달 반 동안 목욕은 단 2회, 별도로 머리만 감겨준 적은 아예 없다고 했다. 심지어 전담 간병인이 없어 한동안은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한 적도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환자 4명이 간병인 1명에게 돌봄을 받는 병실에 입원해 있었다.

김씨는 “엄마가 힘들까 봐 버티려고 했는데, 너무 참기 힘들어 퇴원시켜 달라고 했다는 아버지 말을 듣고 왈칵 울음이 쏟아졌다”며 “거리두기 4단계로 면회가 일체 안 돼 아버지의 사정을 전혀 몰랐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병원에 항의했지만 “환자 보호와 치료에 최선을 다했다”는 답변만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입소 9개월만에 세 차례나 낙상... 몸무게 7㎏ 빠져

코로나19가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노인들이 머무는 요양원에서 학대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6월 제주의 한 요양원에 입원한 70대 할머니는 입소 9개월 만에 세 차례나 낙상 사고를 당해 왼쪽 눈 등에 부상을 입었고 몸무게도 7kg이나 빠졌다. 요양원 측이 낙상 사고 위험이 큰 할머니에 대해 조치를 하지 않은 게 원인이었다. 한 개 그릇에 밥과 반찬, 국물까지 부어 잡탕처럼 배식한 사실도 폐쇄회로(CC)TV를 통해 확인됐다. 제주 노인보호전문기관은 이 요양원을 방임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발할 것을 검토 중이다.

경남 창원의 한 요양원도 3월 70대 환자를 침상이나 휠체어에 묶어둔 채 잠을 자거나 식사를 하도록 하는 등 신체적 학대를 가해 행정처분을 받았다.

노인장기요양법 시행규칙엔 수급자의 신체 또는 정서적 학대가 발생한 노인시설에 대해선 지정취소 처분까지 내릴 수 있지만, 학대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코로나19 사태로 가족 면회가 제한되면서 노인들이 더욱 학대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간병인들이 코로나 집단감염이 이어지는 요양병원 근무를 꺼리는 것도 노인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전국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2019년 5,243건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해 6,259건으로 19.4% 급증했다.

"요양시설 폐쇄성 심화, 코로나가 방아쇠 역할"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요양병원 및 시설의 폐쇄성이 심화하면서 노인 학대가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요양보호 산업 생태계 자체가 민간영리 비중이 높고 지역사회에서 고립돼 있었는데, 코로나19가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이라며 “모니터링 강화 등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순번제 면회 등 가족들이 소식을 알 수 있도록 통로를 개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코로나19로 인한 업무 부담 증가가 학대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인력 관리체계를 좀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구 기자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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