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횡령, 위조 등 이른바 '지능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수사 과정에서 정신장애를 호소한 경우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능범죄 피의자가 정신이상·정신박약·기타 정신장애가 있는 사례는 2010년 335건에서 지난해 694건으로 10년 새 2배 이상 늘었다. 장애 유형별로는 정신박약이 36건에서 131건으로 증가율(264%)이 가장 컸다. 정신이상은 141건에서 192건으로, 기타 정신장애는 158건에서 371건으로 각각 증가했다.
지능범죄는 수사당국에서 '높은 지적 능력을 이용해 저지르는 범죄'라는 뜻으로 통용된다. 지난해 발생한 지능범죄 30만7,706건에서 가장 비중이 큰 유형은 사기(24만5,009건)였고, 횡령(3만5,930건), 위조(1만5,465건), 배임(8,324건)이 뒤를 이었다.
이 가운데 피의자가 정신장애를 호소한 사례는 사기 398건, 횡령 187건, 위조 32건이었다. 경찰청 범죄통계 담당자는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가 정신질환 진단서를 제출하거나 수사관이 정신장애가 있다고 판단한 사례를 취합한 결과"라면서 "상대적으로 경증인 조울증, 변태성욕 등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지능범죄 피의자가 감형을 노려 정신장애를 호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형법상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제10조)는 조항을 의식했다는 것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기와 같은 지능범죄는 고도의 계략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범죄"라면서 "감형이나 법원의 선처를 바라면서 머리를 쓰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귀 변호사는 "사기 피의자 중에선 혐의를 줄이거나 감형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계산에 온갖 진단서를 제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표적 지능범죄인 사기만 봐도 정신장애를 이유로 감형받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철 법무법인 승운 대표변호사는 "일반적으로 정신장애로 인한 감형은 장애와 범죄가 직접적 관련이 있을 때만 해당된다"며 "사기 범죄의 경우 정신질환을 이유로 감형받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현귀 변호사도 "폭행과 같은 범죄는 우발성이 적지 않지만, 사기는 대부분 계획적으로 이뤄지는 터라 감형을 받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했다.
전체 범죄 피의자 중 정신장애를 호소한 경우는 2010년 5,699건에서 2020년 9,019건으로 58%가량 늘었다. 반면 술에 취해 저지른 '주취 범죄'는 같은 기간 47만7,612건에서 25만7,699건으로 절반가량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