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테 올림피언 박희준 “외로운 싸움, 모두 보상받은 기분”

입력
2021.08.10 15:14
19면
돈벌이 안 되는 가라테, 알바와 훈련 병행
아파트 주차장에서 연습해 쫓겨나기도 
현실에 굴하지 않고 동메달 결정전까지
"내 인생 하나뿐인 기적, 모두 보여줬다"

도쿄올림픽에선 위대한 노메달리스트가 많았다. 메달을 따진 못했지만 그보다 더 큰 열정으로 감동을 전했다. 가라테 올림피언 박희준(27)도 그중 한 명이다. 그의 싸움은 누구보다 치열하고 외로웠다. ‘왜 일본 무술을 하냐’라는 모난 시선에 먼저 부딪혀야 했다. 비인기 종목이라 실업팀도 기업의 지원이 없었다. 올림픽을 앞두고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박희준은 그 모든 설움을 우렁찬 기합과 함께 일본 무도관에 내뱉었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유럽선수권 챔피언 알리 소푸글루(터키)에게 1.12점 차로 패했지만, 후회 없는 경기였다.

박희준은 9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올림픽을 “외로운 싸움 끝에 찾아온 너무 큰 보상이자, 내 인생에 단 한 번뿐인 기적이었다”고 돌아봤다.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과거 힘들었던 일들을 다 보상받은 기분”이라고 했다. 그는 “메달 문턱에서 떨어져 아쉬움은 많이 남는다. 그렇지만 정말 열심히 준비한 만큼 최선을 다했고 퍼포먼스도 만족한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다 보여줬기에 후회는 없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실 불모지에 가까운 한국 가라테에서 올림픽 출전 티켓을 거머쥔 것 자체가 큰 성취였다. 그는 함께 운동하던 친구들과 일본 DVD를 보며 독학으로 가라테를 시작했다. 한국에선 밥벌이가 되는 운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난해까지도 아르바이트와 운동을 병행해야 했다. 한 푼씩 모아 해외 훈련을 하러 갔다. 서울에는 마땅한 체육관이 없어 아파트 주차장이나 산을 전전했다. 쫓겨 난 적도 많았다. 그는 “해외 훈련 땐 아낄 수 있는 게 숙소와 식비뿐이라,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면서 콜라 하나 사 먹는 것도 한참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는 늘 든든한 후원자였다. “운동을 중간에 포기하지 말라”며 경제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올림픽 티켓을 거머쥐게 됐을 때 박희준보다 더 기뻐하고 눈물을 흘린 것도 그의 부모다. 박희준은 “이런 값진 경험을 하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올림픽을 마친 그는 이제 은퇴를 고민하고 있다. 금메달을 딴 기우나 료(31·일본)와 은메달리스트 다이미언 킨테로(37·스페인)와 비교하면 아직 어린 나이지만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다. 언제까지고 벌이 없이 아르바이트를 해 먹고살 순 없다. 그는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오고 있는 것 같다. 기량이 더 올라갈 수 있는데 이제 은퇴를 고려해야 하는 게 너무 아쉽다”고 말끝을 흐렸다.

대신 박희준은 현재 재학 중인 교육대학원에서 체육 선생님의 꿈을 함께 키워나갈 계획이다. 수학 교사인 아버지를 보며 그려 온 그의 또 다른 미래다. 그는 “막막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뤄냈다”며 “이 경험을 미래에 대해 고민할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했다.

최동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