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점식 안전벨트를 인류에게 선사하다

입력
2021.08.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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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 안전벨트

영국 출신 작가 리스 보엔(Rhys Bowen, 1941~)의 소설 '팔리 들판에서'에는 작중 인물 제러미가 항공 면장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프로펠러 비행기를 사선 친구와 함께 시승하는 장면이 나온다. "헬멧 같은 거 써야 하지 않아?"라고 묻는 친구에서 제러미는 "만일 추락이라도 하면 그 따위 헬멧 같은 게 별 도움은 안 될걸"이라고 말하는 대목. 그들은 착륙 도중 조종 미숙으로 비행기가 뒤집히는 사고를 당한다. 그나마 목숨을 잃지 않은 건 아마도 안전벨트 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차대전 전투기 조종사들은 안전벨트는커녕 조종석 지붕조차 없는 비행기를 몰고 전투에 임했다. 최초의 안전벨트는 설이 엇갈리지만, 전투기 조종사들이 자구책으로 몸을 의자에 묶으면서 개발됐다고 한다.

자동차 안전벨트는 독일 아우토반이 개통된 이듬해인 1936년 볼보사가 허리를 두르는 2점식 안전벨트를 채택한 게 시작이었다. 지금과 같은 3점식 벨트 역시 볼보사에 의해 1959년 8월 13일 출시한 모델에 처음 적용하면서 세상에 등장했다.

1956년 볼보사 CEO가 된 군나르 엔겔라우(Gunnar Engellau,1907~1988)는 1958년 자동차 사고로 지인을 잃는 비극을 겪었다. 그는 2점식 안전벨트의 한계, 즉 머리와 상체가 운전대 등에 부딪혀 치명상을 입게 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항공기 비상탈출 좌석을 개발한 항공안전기술자 닐스 볼린(Nils Bohlin, 1920~2002)을 특별 채용했고, 볼린이 약 1년 만에 개발한 게 3점식 안전벨트였다. 엔겔라우는 시민 생명권과 직결된 혁신으로 부를 도모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발명품의 특허 출원을 포기했고, 각국 정부는 선택 사양이던 3점식 안전벨트를 1970년대 이후 모든 승용차에 의무적으로 장착하도록 했다. 근년에는 대다수 국가가 운전자 안전벨트 착용을 법으로 의무화하고 있다.

1985년 볼보사에서 퇴직한 닐스 볼린은 여러 영예로운 상과 함께 1999년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