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9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사자 명예훼손 혐의 항소심 재판에 출석했다. 이날 오후 승용차편으로 법원에 도착한 전씨는 거동이 불편한 듯 경호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법정으로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전씨의 이 같은 모습은 불과 한 달여 전 혼자서 뒷짐을 진 채 여유롭게 집 앞 골목을 산책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항소심 두 번째 재판이 열린 지난달 5일, 전씨는 재판이 열린 광주로 향하지 않고 서울 연희동 자택 앞 골목을 거닐었다. 당시 누구의 부축도 없이 혼자서 '뚜벅뚜벅' 산보를 즐기는 장면을 한국일보 기자가 촬영하자, 전씨는 꼿꼿이 선 채로 기자를 노려보며 "당신 누구요"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이날 그의 정정한 걸음걸이나 목소리, 표정에서는 어떤 건강상의 문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랬던 전씨가 한 달여 만에 노쇠함을 '과시'한 것은, 향후에도 건강 문제를 내세워 재판을 회피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전씨는 평상시 정정하다가도 재판을 앞두고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출석을 거부하거나 병세를 과장하는 등의 행태를 과거에도 여러 차례 보인 전력이 있다. 지난 2019년 1심 재판 때 경호원의 부축을 받으며 법정에 나온 뒤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며 불출석 사유서를 냈다. 그리고 얼마 후 지인들과 골프를 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전력이 있다 보니, 지난달 골목 산책 사진이 보도되면서 전씨에 대한 비난 여론이 크게 일었다. 재판부가 전씨를 강제구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비등했다. 그러자 당초 궐석재판을 하기로 결정했던 재판부는 전씨 측에 불출석 시 불이익을 경고했고, 결국 전씨 측은 입장을 바꿔 이날 세 번째 재판에는 출석하기로 했다.
들끓는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이날 오전 연희동 자택을 나서는 전씨의 표정과 몸짓은 한결 부드러웠다. 전씨는 과거 자택 앞 골목이나 법원 등지에서 취재진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 왔지만, 이날만은 마스크를 쓴 채 출입문을 나서며 골목에서 대기 중인 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등 여유롭고 '상냥한' 태도를 취했다. 다만, 한 달여 전 정정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경호원의 손을 꼭 잡고 의지한 채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광주로 향하는 승용차에 조심스럽게 올랐다.
이날 재판에 여론의 눈치를 보며 떠밀리듯 나온 전씨가 나머지 항소심 재판 과정에 성실히 응할지 아직은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