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가 한 마리뿐이겠나”… 中 알리바바, 성폭행 신고 묵살했다 ‘후폭풍’

입력
2021.08.09 19:15
"알리바바, 성폭행 사건 묵살" 폭로에 中 '발칵'
가해자 해고·대책 마련에도 비난 여론 빗발쳐
"기업 내 뿌리 깊은 여성 혐오와 성차별에 기인"
크리스 우 사건 맞물려 성범죄 단죄 여론 고조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에서 발생한 사내 성폭력 사건으로 중국이 발칵 뒤집혔다. 회사가 피해자의 신고와 구제 요청을 묵살하려 했던 사실까지 드러나 후폭풍이 더욱 거세다.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서서 뒤늦게 관련자 징계와 성폭력 방지 대책 마련을 약속했지만, 최근 유명가수 크리스 우의 성폭력 사건으로 성범죄에 민감해진 분위기까지 더해 공분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이 중국 기업에 만연한 성차별 문제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8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알리바바의 한 여성 직원은 전날 회사 인트라넷을 통해 계열사 임원인 직속 상사와 거래처 고객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PDF 파일 11페이지 분량인 이 글은 이후 소셜미디어로 빠르게 퍼졌고, 8일 웨이보 실시간 이슈 1위, 조회수 5억 건을 기록하며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진술을 종합하면 이 여성 직원은 상사와 함께 지난달 27일 산둥성 지난시로 출장을 갔다. 고객과의 저녁 자리에서 그는 상사의 강요로 술을 마셨고, 고객은 술에 취한 그를 성추행했다. 의식을 잃은 피해자는 다음 날 알몸인 채로 호텔 방에서 깨어나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피해자가 입수한 호텔 폐쇄회로(CC)TV에는 상사가 전날 밤 A씨의 방을 4차례 드나드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피해자는 이달 2일 저장성 항저우 본사로 복귀한 즉시 인사부와 고위 경영진에 사건을 신고하고 가해자 해고를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려지고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알리바바는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가해자는 해고됐고, 해당 계열사 전체를 책임진 대표자와 인사부 책임자는 사임했다. 지난시 경찰도 피해자의 신고로 사건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장융 CEO는 사내 성명을 통해 “제때 대응하지 못하고 침묵한 점에 대해 CEO인 나부터 경영, 인사 등 알리바바의 모든 사람들이 반성하고 행동해야 한다”며 사과했다. 아울러 △전사적인 성희롱 예방 교육과 △성희롱 신고 채널 개설 △무관용 성희롱 방지 정책 마련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해 창업자 마윈이 중국 금융당국을 공개 비판한 이후 계열사 앤트그룹 상장이 취소되고 반독점 과징금을 부과받는 등 수개월간 살얼음판을 걸어 온 알리바바는 사내 성폭력 사건까지 터지며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됐다.

이번 사건은 단지 한 개인의 범죄 행위를 넘어 중국 사회 및 기업의 뿌리 깊은 성차별에서 기인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2018년에는 거대 전자상거래 기업 징둥닷컴 창립자인 류창둥이 미국에서 20대 중국인 대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됐으나 증거 부족으로 풀려난 일도 있었다. 블룸버그통신은 “여성 직원에게 성행위 묘사를 요구하는 사내 신고식 문화부터 음주 강요, 여성을 이용해 남성 노동자를 채용하려는 구인광고에 이르기까지 기술기업 전반에 성차별이 만연해 있다”고 비판했다. WSJ도 “중국 기술기업의 긴 노동시간과 여성 혐오 및 성 불균형이 업계를 성폭력의 온상으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중국에선 아이돌그룹 엑소의 전 멤버인 크리스 우가 미성년자를 포함해 여성 20여 명에게 성관계를 강요한 혐의로 체포되면서 온라인상에서 ‘미투(MeToo) 운동’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여기에 알리바바 사건까지 맞물리며 성범죄 단죄 여론은 더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한 웨이보 사용자는 “방에서 바퀴벌레 한 마리를 발견했다면 이미 바퀴벌레 무리가 득시글거린다는 의미”라고 꼬집어 ‘좋아요’ 수만 개를 받기도 했다.

김표향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