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은 인류의 진보를 만들어온 가장 큰 동력이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호기심이 과학과 지식만을 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금지된 상자(사실 항아리가 맞는 번역입니다만)를 기어코 열었던 판도라의 후손인 탓인지, 우리의 호기심은 엉뚱한 곳을 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호기심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당연합니다. 자극적인 제목을 단 광고는 물론이고,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스팸문자의 유혹과 싸워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입니다. 조금 더 진화하면 사람들을 화나고 싸우게 만드는 이른바 ‘어그로’로 진화하는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도발적인 글을 올리고 싸움을 부추기는 이들의 역사는 인터넷 게시판의 도입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엔 그런 글들에 대해 진지한 충고의 분위기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그로성 글에 대한 온라인 세계의 한 방식이 자리 잡게 됩니다. 정색하고 대응하기보다는 그것을 놀이로 치환해버리는 것입니다. 예컨대 누군가 백신을 맞으면 몸에 엄청난 변화가 생기니 절대 백신을 맞아서는 안 되며 그것이 세계 정부의 음모라는 식의 글을 올린다면, 거기엔 백신을 맞고 자신이 동물로 변했다 거나 몸이 자석이 되었다는 댓글들이 달리곤 합니다. 원래 글을 올린 사람이 악당인지 아니면 천치인지와 무관하게 그 글 타래는 일종의 놀이터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도발적인 글은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서 “진압”됩니다.
문제는 이런 맥락을 깊게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이런 글들을 접하는 경우입니다. 인터넷에 미친 사람들이 살고 있다거나, 혹은 우리나라가 반백신주의자들의 천국이 되어버렸다고 걱정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국민들에게 백신 관련 교육을 해야 한다거나 아니면 그런 나쁜 글을 올린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어그로 글을 쓰는 이른바 “관심종자”들이 꿈에도 그리는 일입니다. 자신의 주장이 드디어 온라인 게시판 구석을 벗어나 온 국민의 관심을 얻게 된 것이니까요.
그런데 최근 이런 일들이 가끔씩 일어납니다. 특히 여혐 혹은 남혐에 관련된 주제에서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한 양궁선수의 머리스타일에 대한 어이없는 이야기가 대표적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골방에 앉아 상대 성에 대해 비아냥거리고 혐오하는 글을 쓰는 이들은 전 세계 어느 사회에나 존재합니다. 이런 글이 전혀 유쾌할 리 없고,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도 않겠지만 이들이 매우 고립된 커뮤니티 안에서만 존재하는 한 그 영향력은 제한적입니다. 이런 이들은 심지어, 자신의 온라인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경우도 드뭅니다. 그런데 굳이 이들의 글을 찾아다니면서 발굴하고, 주류 언론의 기사로 보도하고, 심지어 정치적인 논쟁거리로 삼는 일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이들 관심종자들은 자신의 글이 주류 사회에 논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점점 더 강하고 시끄러운 글을 씁니다. 온라인에서 “먹이주기”라고 부르면서 경계하던 일이 언론인과 정치인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화장실은 원래 어느 정도 더러운 곳입니다. 세상의 화장실을 하나씩 찾아다니면서 열어보고 그곳의 더러움엔 분노하는 것이 우리가 꼭 해야 하는 일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