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주택 마련을 지원하는 정책들이 치솟은 집값 때문에 유명무실해지자 실수요자와 전문가들은 "기준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는 "집값 자극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지만 최근 정치권의 고가주택 기준 상향 움직임을 감안하면 이 같은 신중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9일 국토교통부 등 부동산 정책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서민 대상 주택 우대 정책 기준 조정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상 주택 가격 기준을 섣불리 올렸다가 부동산 시장 자극 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행 청약제도의 소형·저가주택 기준 완화 가능성에 대해 "아직 공식적인 검토 단계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다만 "올해 공시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끊임없이 들어오는 민원을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최근 보금자리론의 지원 한도 확대 방침을 발표한 기획재정부도 대상 주택 가격 상향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는 "서민 실수요자 지원이라는 명분도 중요하지만 무한정 (대출 지원 금액) 공급을 할 수는 없어 재원의 한계와 가계부채 증가를 두루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생애최초 주택 구입자의 취득세 감면 규정에 대한 시장의 요구를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각 부처의 건의 사항을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을 아꼈다.
최근 정치권이 '부자 감세' 비판을 무릅쓰고 고가주택 기준을 상향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정부의 태도가 미온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6월 더불어민주당은 1가구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과세 주택 기준을 '공시가격 9억 원 초과'에서 '공시가격 상위 2%'로,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을 기존 '9억 원 이하'에서 '12억 원 이하'로 조정하는 방안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정부도 여당의 이 같은 정책 방향에 공감을 표했다. 지난달 열린 '2021 세법개정안 브리핑'에서 김태주 기재부 세제실장은 여당의 종부세 개정안에 대해 "2009년 설정된 기준이 그동안 부동산 가격 상승, 물가 상승을 반영하지 못해 종부세 대상자가 크게 증가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며 "법안에 대해 정부도 공감한다"고 밝혔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서민의 내 집 마련을 위한 제도 현실화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부동산 안정화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고가주택 기준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서민에게만 과거와 같은 눈높이를 기대할 순 없을 것"이라며 "대상은 확대하되 한도는 제한하는 주택연금이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집을 담보로 연금을 받는 국가 보증 금융상품(역모기지론)인 주택연금은 지난해 12월 가입 주택 가격 기준이 '시가 9억 원 이하'에서 '공시가격 9억 원 이하'로 완화됐다. 주택 가격 상승으로 가입대상에서 제외되는 은퇴자들이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단, 시가 9억 원을 넘는 주택의 월지급금은 시가 9억 원을 한도로 설정했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규정이 완화돼 약 12만2,000명이 주택연금 신규 가입이 가능한 것으로 파악했다.
정책 대상 가격 기준을 고정하기보다 지역별 중위가격이나 평균가격에 연동하는 방안도 제기됐다. 김준환 서울디지털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대상 주택 가격을 무조건 올리기보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때를 고려해 주택 평균 매매가격의 일정 비율을 기준으로 잡아 유동적으로 설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