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가정보원과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충북 청주 지역 활동가 4명은 수년 전부터 북한의 지령을 받고 간첩 활동을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수사 당국은 이들이 중국과 캄보디아에서 은밀한 방식으로 북한 공작원들과 접선했고, 국내에선 철저하게 보안을 지키면서 온라인상으로 북한 측과 교신했다고 보고 있다.
8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이들 4명에 대한 구속영장에 따르면, 수사 당국은 피의자 A씨(구속)가 2017년 5월 중국 베이징에서, B씨(구속)가 2018년 4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각각 북한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과 비밀리에 만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A씨는 베이징사범대 앞에서 북한 공작원 조모씨와 접선했다. 두 사람은 악수나 인사 없이 사전 약속된 표시로 상대를 알아봤는데, A씨는 한 손에 신문, 다른 손엔 생수병을 든 것이 표시였다. 두 사람은 서로 모른 척 4~5m쯤 떨어져 교정을 걸으면서 주변을 감시한 뒤 함께 택시를 타고 이동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수사 당국은 A씨가 조씨에게 "충북 지역에 북한의 전위 지하조직을 결성하라"는 지령을 받아 귀국했고, 그해 8월 다른 피의자 3명과 '자주통일 충북동지회'(충북동지회)를 결성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대해 A씨는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난 사실이 없으며, 수사기관이 증거로 확보했다는 사진은 아들이 유학 중인 중국 대학 관계자들과 찍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B씨는 프놈펜 시내에서 북한 공작원 이모씨와 조씨를 접선했다. B씨와 조씨는 공원에서 서로 신호를 주고받은 뒤 각자 '툭툭'이라 불리는 오토바이택시를 타고 다음 접선 장소인 사원으로 이동했다. B씨는 사원 인근 시장에서 조씨를 다시 만나 이씨가 기다리고 있는 시내 호텔로 이동했다. 당국은 B씨와 두 공작원이 국내 조직원들의 세부적 임무와 관련한 내용을 협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정원과 경찰은 피의자들이 2019년 11월 중국 선양시에서 북한 측으로부터 공작금 2만 달러를 받았다면서 구속영장에 그 과정을 자세히 기재했다.
북한 문화교류국은 그간 노출되지 않은 인물이 공작금을 수령하라는 지령을 내렸고, 충북동지회는 A씨와 부부 사이로 조직 내 연락책 역할을 맡고 있는 C씨(구속)를 중국으로 보냈다. C씨는 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베이징에서 유학 중인 아들을 돌보러 출국하는 것처럼 꾸몄다. 이를 위해 아들의 현지 후견인과 지도교수를 면담하는 일정도 세웠다.
공작금 교부 작전엔 북한 공작원이 선양시 대형마트에 있는 무인사물함에 돈을 넣어두면 C씨가 찾아가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이 동원됐다. 피의자들은 미행 등으로 공작금을 수령하지 못하면 돈을 포기한다는 대비책도 마련했다. C씨는 사물함 사용법을 미리 익히고 현장 정찰 계획을 세운 뒤 공작금을 챙겨 귀국했고, 환전은 B씨가 맡아 처리했다. 이런 영장 내용에 대해 A씨 등은 "공작금을 받은 일이 없다"는 입장이다.
수사 당국은 피의자들이 국내에선 철저한 보안 아래 북한과 온라인으로 교신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영장 내용을 보면 피의자들은 국내 기관의 추적을 피하려고 외국계 이메일을 이용해 북한 측과 연락했다. 여기에 사용한 노트북은 북한 측과 메일을 주고받을 때를 제외하면 인터넷에 연결하지 않았고 사용 후엔 데이터 복구 방지 프로그램을 활용해 방문 기록을 즉시 삭제했다.
당국은 압수수색을 통해 이들이 북한과 주고받은 지령문 및 보고문 84건을 확보했는데, 문건 대부분은 '스테가노그래피'라는 암호화 기법이 적용됐다고 영장에 밝혔다. 이는 북한 문화교류국이 과거부터 써온 디지털 보안 기법으로, 해독 프로그램으로 암호를 풀어야 문건 내용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