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한미연합군사연습(한미훈련) 실시를 앞두고 대북 인도적 협력을 강조했다. "한미훈련 중단 없이는 대화도 없다"며 완강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 내기 위한 유인책을 던진 것이다. 최근 식량난과 풍수해 위기에 처한 북한이 내부 위기 극복을 위해 태도 전환에 나설지 주목된다.
정부 관계자는 8일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위한 구체적인 상황을 검토하고 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과 북중 국경 상황, 모니터링 인력의 왕래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북한의 호응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대북 인도적 협력 의지가 강한 만큼 북한의 의사만 확인된다면 당장 인도적 지원에 나설 수 있게 준비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미는 북한의 코로나19 대응이 시급한 만큼 보건 협력을 우선순위에 올려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 6일 전화통화에서 북한과의 협력 방안을 협의했다. 미 국무부도 보도자료를 통해 "양 장관이 한반도에 대한 인도주의적 계획 모색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한미가 인도적 지원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나선 배경에는 북한이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지난달 27일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으로 남북 간 '훈풍'이 불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닷새 만인 지난 1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한미훈련 중단이 대화의 선결조건임을 재확인했다. 이에 한미훈련 계획을 재조정하기보다는 인도적 협력 카드로 북한에 손을 내민 셈이다.
한미가 훈련 규모 축소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공고한 한미동맹을 재확인하고 북한에 끌려간다는 여론의 비판을 피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아울러 향후 북한과의 대화를 염두에 둔 '성의'를 보여줬다는 명분인 측면도 있다. 군 당국은 10∼13일 위기관리 참모훈련을 실시하고 16~26일 본연습을 실시한다는 일정은 그대로 두되, 올 3월 전반기 훈련 때보다 참여 인원만 줄이기로 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으로 진행되는 훈련인 만큼 프로그램 구동에 필요한 최소 인원만 투입되더라도 실제 훈련 효과와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게 군 관계자의 설명이다.
관건은 북한의 반응이다. 북한은 아직까지 내부에 남북 통신선 복원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남북관계는 적대관계'라는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남북 통신선 복원의 대가로 요구한 한미훈련 중단도 수용되지 않고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한미훈련 중단이라는 근본적 문제 해결 없이 인도적 지원을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망했다. 다만 북한이 단기간 내 식량위기를 극복하기 어렵고 최근 함경남도 지방의 수해로 민심 이반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마지못해 손을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