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지령에 따라 미국 스텔스기 도입 반대 운동 등을 벌인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충북 청주 지역 활동가 4명이 지난해 총선 무렵 국내 동향 파악을 지시받고 북한에 보고했던 것으로 국가정보원과 경찰 조사 결과 나타났다. 활동가들이 만났던 지역 내 여권 인사는 현재 경찰 조사를 앞두고 있으며, 피의자들은 "일상적인 정책 제안 활동이 북한 지령인 것처럼 조작된 것"이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국정원과 경찰은 활동가 4명이 '자주통일 충북동지회(충북동지회)'를 결성한 뒤 북한 지령을 수행한 것으로 판단하고 이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8일 한국일보가 확보한 피의자 4명의 구속영장에 따르면 수사 당국은 이들이 작성한 '충성 혈서'를 포함해 80건이 넘는 대북보고 및 지령이 담긴 USB를 확보했다. 구속영장에는 이들이 중국 등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선하고 공작금을 수령한 정황도 적시돼있다. 법원은 지난 2일 피의자 4명 중 3명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활동가들의 구속영장을 살펴보면, 국정원과 경찰은 피의자들이 F-35A 스텔스기 도입 반대 등 북한 지령을 확대하려고 여권 인사와 더불어민주당 지역 당직자에게 접촉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은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북한 문화교류국으로부터 "총선 관련 투쟁에서 전술적 대책 등을 강구하라" "지역 총선 관련 여야 동향도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고 움직인 것으로 조사됐다.
문화교류국 지시 직후, 피의자들은 민주당 충북도당 당직자 A씨와 만나 선거 전략을 묻고 F-35A 도입반대 운동 등에 연대 요청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피의자중 한 명은 A씨와의 접견 내용을 녹음할 것을 다른 피의자에게 지시했으며, 접견 후에는 "선거 연대와 정책 연합을 위한 논의를 진행했고 이후 B의원 면담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라고 북측에 보고했다. B의원은 당시 충북지역 총선 후보였던 민주당 중진의원이었다. B의원은 피의자들과의 접견 여부에 대해 "만남이 성사된 적은 없다. 접견 요청이 들어왔으나 당 차원에서 거절했던 걸로 안다"고 답했다.
A씨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과거 피의자들과 접견한 것은 사실이나 총선 이야기가 오간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A씨는 "(피의자들이) F-35A나 밤묘목 심기 등 통일운동과 관련된 정책 연대를 요청하길래 해당 건은 당 차원에서 추진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답했다"며 "활동가들의 민원을 받아주는 차원에서 만났을 뿐, 특이사항은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A씨는 "접견과 관련해 수사 당국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을 예정"이라고도 밝혔다.
피의자 4명 중 구속영장이 기각돼 유일하게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고 있는 C씨는 8일 한국일보와 만나 정치권 인사들과의 만남은 북한 지령에 따른 게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C씨는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선거 동향을 살피고 정당에 정책 연대를 요구하는 건 일상적인 일"이라며 "활동가들이 모여 있는 메신저 방에 논의 결과를 공유한 걸 두고 당국이 '대북 보고'라고 짜맞추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속영장에 따르면 피의자들은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권 인맥 등을 활용해 국내 장악력을 넓히겠다는 계획을 조직 결성 초기부터 북한에 보고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이들은 충북동지회 결성 당시 개인별 직책과 임무 분담 내용을 작성해 북측에 보고했는데, 여기엔 "민주노총 전직 간부(현 민주당 정책위 당직자) D씨와의 연계" "모 대기업 현장 조직 완전 장악" "여당 인물들 인맥관계 이용" 등의 내용이 적혔다.
국내 대기업 노조를 장악하고 충북 지역 청년들의 의식화 작업을 담당했다고 영장에 적힌 C씨는 2016년 총선 당시 대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구속된 E씨 역시 2010년 대전 대덕구청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선거 출마는 노동권 신장을 위한 것이었을 뿐 북한 지령을 받거나 대북보고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C씨의 연계 활동 임무 분담에 거론된 D씨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피의자들 중 두 명(C씨와 E씨)과 알던 사이였을 뿐이며 따로 수사 기관에서 소환 일정을 통보받은 바 없다"고 설명했다.
피의자들은 오랜 노동운동 경력으로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 특보단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E씨는 7일 경찰서 유치장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당시 대선 승리를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운동권 세력을 많이 활용한 것은 맞다"면서도 "북한 지령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C씨도 "노동 특보 활동을 한 것은 맞지만 우린 수많은 특보단 중 일부에 불과했다"고 말했다.